brunch

연재 중 창문 2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은 Oct 21. 2024

따뜻한 겨울

인생의 어떤 챕터의 배경음악이 될 만한 노래.

종현의 노래가 플레이리스트의 모든 항목을 차지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의 노래에 억눌린 슬픔이 농축되어서 겨울날 새벽 얼음물을 삼킨 것마냥 서늘함이 마음을 뚫고 지나가지만, 겨울에만 느껴지는 포근함처럼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이 녹아 있다.

여전히 그 노래들을 들으면 그때의 감정과 생각이 되살아났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죠
그대도 내 맘이 얼마나 큰지 잘 모르잖아
당연해 당연히 내 맘이 더 큰데
넌 내가 더 사랑한다며
아니 내가 더 사랑한다고
- 종현, <눈싸움>

그때 처음 알게 된 시가 있다.

아카시아 가득한 저녁의 교정에서 너는 물었지 대체 이게 무슨 냄새냐고
그건 네 무덤 냄새다 누군가 말하자 모두 웃었고 나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어

다른 애들을 따라 웃으며 냄새가 뭐지? 무덤 냄새란 대체 어떤 냄새일까? 생각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고
흰 꽃잎은 조명을 받아 어지러웠지 어두움과 어지러움 속에서 우리는 계속 웃었어

너는 정말 예쁘구나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쁘다 함께 웃는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는데 
웃음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어 냄새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기에 우린 이렇게 웃기만 할까?

꽃잎과 저녁이 뒤섞인,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너는 가장 먼저 냄새를 맡는 사람, 그게 아마
예쁘다는 뜻인가 보다 모두가 웃고 있었으니까, 나도 계속 웃었고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안 그러면 슬픈 일이 일어날 거야, 모두 알고 있었지

- 황인찬, <유독>

고등학교 때 알게 되고 나서 가장 좋아하는 시가 되었는데, 이해하기가 어려워 여기저기 해석을 찾아봤었다.

민지와 이야기하느라 오랜만에 다시 꺼내보았다.

대체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기에 우린 이렇게 웃기만 할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습해 오는 불안한 예감, 그리고 애써 막아보려 계속 웃는 아이들.

왠지 모르지만 아름답고, 왠지 모르지만 불안하고, 그렇지만 그 와중에 웃어보는 것.

살면서 정말 자주 느끼는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한 시이다.

몇 년 전의 노래와 시가 떠오르는 걸 보면 불안한가 보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불안하고 그렇지만 아름답고 그걸 붙잡아보려고 웃고 그렇게 사는 거겠지.

그런 게 인생이겠지.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전 20화 어떤 끄덕거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