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스터디룸에서 전자책을 읽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책을 읽는 건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직면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도망치려는 회피일까.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라서, 가끔 너무 무섭지 않니?
아픈 게 지나가고, 그 아픔의 무늬를 지닌 어떤 사람이 되었을 때 다른 아픔의 무늬를 알아보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픔의 한복판에서 발을 구르는 채로 다른 사람 곁에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 가까이 가면 머리채를 잡혀 함께 가라앉을 것이고 너무 멀찍이 서서 그의 이름을 반복해 외치는 건 그에게나 나에게나 무력하다.
타인이 가장 사랑스러울 때는 순수하게 '저 사람을 모르겠다'는 마음이 가장 클 때가 아닐까, 막연하게 그렇게도 생각해보았다.
- 김화진, <척출기>
어디까지 다가서야 할지, 어디에서 기다려야 할지, 그런 것들이 고민되었다.
정말 시시콜콜한 것에서부터 뭉뚱그려 추상화한 것까지 그 넓은 스펙트럼에서 어느 지점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구체적으로 말하는 건 언제나 어렵다.
얼마만큼의 구체성이어야 할지.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라는 노래가 말하듯이,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라는 말로 충분할 때도 있지만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신문을 사려 돌아섰을 때"라는 설명이 필요할 때도 있으므로.
확률과정 시험과 회귀분석 시험이 끝나고 나자 조금 여유가 생겼다.
수업 전에 시간이 남으면 그레인저 도서관 앞에 있는 강가에 앉아 광합성을 했다.
가만히 앉아 강물에 떠가는 오리들을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다.
그동안 예약해놓고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던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도 읽었는데, 정선임 작가의 소설이 너무 좋아서 소설집을 따로 찾아 읽었다.
수상작품은 <요카타>였지만 소설집 제목이기도 한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양이는 거의 못 볼 거야. 그래도 가끔 이름을 불러줘."
"이름을 부르면 나와?"
"아니, 대답도 안 해."
"그러면 뭐 하러 불러?"
"... 찾고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고양이는 원래 잘 숨어 있어요. 특히 낯선 사람이 있으면."
"그렇죠. 원래 낯을 가린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너무해요. 이럴 거면 한 마리든 두 마리든 똑같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다르죠. 그건 정말 달라요."
"사람들은 별이 여섯 개여도 여덟 개여도 국자 모양이면 북두칠성이라고 부를 거야. 어차피 별 하나가 더 있든 말든 누가 신경 쓰겠어."
"아니야. 그렇지 않아."
- 정선임,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하나의 영혼이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되고 사랑이 된다는 것.
백수린 작가나 김화진 작가와 비슷하게 잔잔하면서도 슬프고 따뜻한 이야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