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허먼
교수님께 트라우마 관련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빌려주신 책이다.
성폭력과 전쟁 트라우마를 주로 다룬 책이다.
특히 성폭력으로 인한 PTSD에서는 선구자적인 책이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요즘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들을 많이 읽으면서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성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와 그것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구조화된 PTSD 치료법도 단계별로 설명되어 있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았다.
생물학적인 문제만 다루는 것보다는 사회적인 요소도 포괄하고 싶어서 정신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본문
나치 수용소의 생존자들을 연구한 정신 의학자 레오 아이팅거는 피해자와 국외자가 가진 관심 사이의 잔혹한 충돌을 설명한다. "전쟁과 피해자는 공동체가 잊고자 하는 무엇이다. 망각의 베일은 고통이 담긴 불쾌한 모든 것들에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얼굴을 맞댄 두 측면을 발견한다. 한편은 잊고자 소망하지만 잊지 못하는 피해자이고, 다른 편은 잊기를 원하고 또한 그러는 데 성공하는 강하고 종종 무의식적인 동기를 지닌 다른 모두이다. 그 대립은... 늘 양편 모두에게 너무 고통스럽다. 가장 약한 편이... 이렇게 불평등한 침묵의 대화 속에서 패배자의 자리에 남겨진다."
법체계는 국가의 우월한 권력으로부터 남성을 보호하지만, 남성의 우월한 권력으로부터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가해자의 권리는 강하게 보증하지만,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서는 사실상 어떠한 보증도 하지 않는다.
법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를 보고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아이히만에 대한 문제는 정확히 그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 많은 이들이 도착증이나 가학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며, 그들이 당시에나 지금이나 지독히 무섭게도 정상적이라는 점에 있었다. 법 기관의 관점, 그리고 우리의 도덕적 판단 기준으로는 이러한 정상성이 모든 잔학함을 합쳐 놓은 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시행착오를 인내할 수 있다면 주도성을 안전하게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받지만, 만성적으로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떠한 행동 속에도 긴박한 결과가 잠재되어 있다. 실수를 위한 공간은 없다.
그녀에게 관계에 다가가는 것이란 마치 삶과 죽음의 문제와도 같다. 그녀는 구조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절박하게 매달리고, 가해자나 공범자로 짐작되는 사람에게서는 갑작스럽게 도망치고, 동맹자로 보이는 이에게는 헌신적인 태도를 보이고, 무관심한 방관자로 보이는 이에게는 분노와 경멸을 드러낸다. 그녀 안에는 다른 이에 대한 어떠한 내적 표상도 안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작은 실수를 저지르거나 조금만 실망스럽게 해도 그의 역할을 급작스럽게 바꾸어버린다. 어찌할 수 없게도, 실수를 위한 공간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뢰를 측정하는 생존자의 가혹한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생존자는 관계를 피하게 된다. 그녀의 고립은 자유로워진 이후에도 지속된다.
학대의 현실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아이는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의미 체계를 구축해야만 한다. 불가피하게도, 아이는 자신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현실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고 결론짓게 된다. 처음부터 아이는 이러한 설명을 집요하게 붙들면서, 의미와 희망과 힘을 지탱해 갈 수 있다. 악한 이가 나라면, 부모는 선하다. 악한 것이 나라면, 선해지기 위해서 나만 노력하면 된다. 이 운명을 이끈 것이 나라면, 어떻든 간에 이것을 변화시킬 힘은 내게 있다.
지속적인 공포를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사람을 압제하는 기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관찰자들은 만약 자신이 유사한 상황 속에 있었다면 피해자보다 더 큰 용기를 내어 저항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 관한 연구의 결과는 이러하다. "여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여성의 성격을 탐색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남성의 폭력은 남성에 의한 행동이라는 사실은 자주 잊히곤 한다. 그만큼, 이들의 행동을 가장 생산적으로 설명해 준 연구는 남성의 성격에 초점을 둔 연구였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다. 여성의 성격을 통해서 남성의 행동을 설명하고자 했던 어마어마한 노력에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정신의학 제도 속의 남성들은 냉담한 거부를 지속하였다. 그들은 심리적 외상에 대한 지난 10년간의 광대한 문헌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를 자연스럽게 인정하였으나, 무지함이 왜 문제가 되는지는 보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름들은 어색하기도 하고 쓰기에도 힘들지만, 이 증후군을 인식하게 해 준다면 이름조차 없는 것보다 실은 나은 것이다.
카디너는 "환자에게 증상의 근원과 의미를 알리는 것은 치료에 언제나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동시에 "이러한 사례를 맡은 치료자는 양육적인 부모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치료자는 환자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외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마지못해 알약만 처방하는 태도로는 이것을 결코 이루어낼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정신의학자인 유진 블리스는 다중 인격 장애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마취 없이 수술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도 홀로 외상과 대면할 수 없다.' 만약 치료자가 자신의 전문 영역 내에서 고립된다면, 적절한 지지체계를 갖추기 전까지는 외상을 경험한 환자들과 만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통합은 죽음에 대면하면서도 삶이 가치 있다고 긍정하고, 개인적인 삶의 유한성과 인간 조건의 비극적인 한계 속에서 조화를 찾으며, 절망에 빠지지 않고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다른 사람들과의 공통성이란 '보편'이라는 단어에 그 모든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사회에 소속되고, 대중으로서 역할을 맡으며, 일반적인 무엇의 일부분이 됨을 의미한다. 그것은 친숙해지고, 서로를 알아가며, 공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관례적이고, 흔하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또한 작다는 느낌, 사소하다는 느낌, 나의 고뇌는 "바다 위에 떨어진 하나의 빗방울"이라는 느낌을 함께 담고 있다.
보다 정밀하고 뚜렷한 지식이 획득될지라도, PTSD에 관한 최근의 생물학적 연구 성과는 현저하게 생물학 중심적인 협소한 연구만 몰아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외상성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 영역이 성숙할수록, 새로운 세대의 연구자들은 외상의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차원의 핵심적인 연결고리를 다시 발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치유 과정에 대한 통찰은 전 세계의 수많은 외상 생존자들 중에서 정식 치료를 받을 기회가 없었던 이들의 지혜에 의존한다.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회복을 위하여 개인적 힘과, 공동체 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지지 관계에 기대어 자기만의 방책을 만들어 내야 했다. 치료 장면에 들어서지 않은 생존자들이 어떻게 회복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보다 효과적이고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성과 아동의 종속은 우리 문화에 너무나 뿌리 깊게 박혀 있고, 여성과 아이에 대한 폭력이 기본 인권 침해라고 인정된 것은 최근에 들어서이다. 구타, 스토킹, 성희롱, 아는 이에 의한 강간과 같은 광범위한 양상의 압제는 여성주의 운동에 의해 정의되기 전까지는 범죄도 아니었고 이름도 없었다. 아동 성학대와 같이 범죄임이 당연한 폭력조차 과거에는 가해자가 너무나 효과적으로 사면되는 바람에 신고하거나 고소하는 일이 드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