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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김화진

by 성은

김화진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문학동네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바로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했다.​

나는 책을 빨리 읽는 습관이 있는데,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에 닿는 문장이 너무 많아서 일부러 천천히 아껴가며 읽었다. ​

그 말들을 여기에 옮겨보려고 한다.

본문

스스로도 실망할 만한 짓을 하면서도 누군가가 나에게 실망했다는, 실망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심장이 조여왔다.

나에게 내미는 손, 그런 것에 나는 너무 약했다.

아름이라는 인물에게 단번에 마음을 주게 했던 문장이다.

나는 잘 붙들리는 사람이었다. 붙잡아주는 쪽에 보통 이상으로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 그걸 저버리면 저 사람을 실망시키겠지, 하고 지레 겁먹는 사람.

가끔 약에도 체해. 그럴 때 있잖아. 선의에도 걸려 넘어지잖아.

누군가가 나를 걱정한다면 나는 오히려 불안해지고 두려워질 것만 같다.

민아의 마음이 눈물 나게 이해돼서 안아주고 싶었다.

마음에 있는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말을 못해도 있는 마음 같은 게 있어. 그 마음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어.

그런데 그 좋은 걸 못 누리고 항상 이 좋은 게 언제 끝날까 생각했어.

너무 소중해서,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야.

그즈음부터는 전혀 다른 역할놀이가 시작된다. 나 자신이라는 역할.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걸.

늘 염두에 두면 좋을 말.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해주는 사람은.

힘들 때 말 안 해주면 서운해. 서운해서 화내는 사람들도 있어.

그리고 나는 평생에 걸쳐,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몇 명이나 오해하며 살아갈까.

세 사람 모두 우리가 셋이라는 사실을 더없이 잘 알고 있어서, 가끔 둘이고 자주 둘이고 영원히 혼자이지만 우리는 셋이라는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관계가 된 게 좋았다.

셋이라는 숫자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마음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문장이다.

과거와 미래로 펼쳐진 나들 사이에 내가 서 있다. 어느 쪽으로든 발을 디뎌야만 닿을 수 있는 내가 이쪽저쪽에 서 있고. 언제나 나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끝없이 펼쳐진 가능성 사이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할 때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그토록 많고 또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지루해 보이는 환경이 때로는 환하게 빛날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보고 자세히 살고 싶다.

낙천적인 소망을 품어야 한다는 것, 벗들의 사랑을 확신하고 나를 비난하는 자들에게도 생각을 감추지 말며,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벗들이 억측하지 않도록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것.

너무 맞는 말인데 실천하기 너무 어려워서 뼈를 맞은 기분이었다.

어른이 되는 시간은 그런 걸로 잔뜩 채워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다리는 시간. 견디는 마음. 참는 눈빛. 삼키는 말. 모르는 척하는 시선. 아는 척하지 않고, 상대가 준 것까지만 받고, 상대가 모르게 더 받았어도 고마움을 견디고, 다른 것을 내밀고, 마침내 주고받고, 또다른 우리가 된다. 또다시, 또다시 생각하며. 그렇게 이어져오는 관계의 시간이 있었다. 내 중심이 흔들릴 때,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애정을 바랐다. 내가 나를 지탱하기 버거울 때,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지 아닌지로 내가 선 자리를 확인받고 싶었다.

읽는 내내 아름의 마음에 공명했다. 남들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하고, 누군가로부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어하는 마음.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거니까. 그만큼 사랑한다는 거니까.

카메라는 별 무리 없이 사람 가까이에 다가갈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카메라는 유용한 도구이다. 영구적인 연결 끈 없이도 사람들의 삶에 가 닿을 수 있는 마법의 여권 같기 때문이다.

직전에 읽는 <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은 사진을 부정적으로 바라봤기에, 이러한 관점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사진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현저하게 달라진다. 피사체를 향한 깊은 관심은 글이나 그림에 담을 수 없는 무언가를 포착해 낼 수 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지치지 않는다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었다.

서울국제도서전 북토크에서 백수린 작가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글쓰기를 하려면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은 채팅창 안에서 시차 없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좋아서, 그게 뭐라고 빨갛게 달아오른 뺨으로 흐흐 웃었다.

시차 없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건 전화와 비슷하다. 대부분을 상대로 하는 전화는 부담스럽지만 기꺼이 전화를 하고픈 몇몇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그야 좋아하는 마음. 너에게 없는 것이 내게 있고 내게 없는 것이 너에게 있길 바라는 마음. 혹은 기꺼이 그렇게 착각하고자 하는 마음.

어쩌면 나에게 있는 것이 너에게도 있어서가 아니라, 내게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그 사람 말이, 어쨌거나 존재하는 걸 이해하려고 이래저래 애를 쓰는데, 우리는 절대로 알 수가 없대.
그럴 거면...
그럴 거면 왜 하냐고? 재밌잖아. 이런 걸로 마음이 움직이는 게.

능소화가 늘어진 담벼락 아래로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갔다.

여름의 풍경을 묘사한 하나의 문장이 어떻게 이다지도 사랑스러울까.

작가의 말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뭔가 좋다... 같은 말을 그제야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언제나 이해가 되어야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이유를 설명해야만 할 것 같았는데, 꼭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잘 떠올려보면 더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떠오르지 않는 대로 놔두는 것도 좋겠어요.

그런데 쭈뼛거리는 사람과 용기 있는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모르고 서투르지만 그렇게 쭈뼛거리면서도 한 번 해 보는 사람이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다.

친구가 된다고 할 때, 언제나 셋은 퍽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나머지 둘을 생각할 때의 마음과 한 명 한 명을 각각 생각할 때의 마음이 다를 테니까요. 둘일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의 경우의 수가 늘어나니까요. 그것을 하나하나 상상하고 있자면 머리가 아프고... 하지만 가까워져 버린 이상 생각을 멈출 수가 없고... 그렇지만 결국 나는 그 두 사람을 모두 좋아해서 셋은 셋으로 남은 것이겠죠.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서 셋인 것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셋이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이고자 하는 의지가 세 사람에게 동시에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생각하며 소설을 썼습니다.

그 시간 동안 서로 미워하고 얕잡아보고 서운하고 꼴 보기 싫은 순간들을 포함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시간이 흐르면, 얄밉지만 좋은 친구,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좋은 건 좋은 친구, 꼴 보기 싫을 때가 있지만 계속 친구임에는 변함없는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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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은 언제나 '진짜'에 대해 쓰려 한다. 진짜 친구, 진짜 꿈, 진짜 기분, 진짜 마음에 관하여. 진심의 순간에 닿는 건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포기하지 않는다. 닿고자 하는 열망, 닿았던 것만 같은 찰나에 깃든 복잡한 감정을 세심하게 포착하고 섬세하게 재현하려 애쓴다. 꼭꼭 눌러 적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주에 대하여>와 <공룡의 이동 경로>를 읽으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을 그대로 꺼낸 것만 같은 느낌이 들까 했는데, 그 이유를 고스란히 담아낸 말인 것 같아서 가져왔다.


200페이지가량의 짧은 소설에서 참 많은 문장들이 마음에 남았다.

그만큼 하나하나의 문장이, 세 인물의 마음이 소중했다.

여름에 시작해서 여름에 끝을 맺는 이야기라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긴 날과 푸르고 통통한 나뭇잎, 크롭티, 산책, 능소화를 나도 사랑하게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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