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법
점점 죽어가고 있어요. 하루를 살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나를 문득 발견해요. 오늘 하루가 끝나면 지친 마음이지만 그 마음을 가지고 밝은 척해요. 밝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거 같아서, 나를 안 좋게 볼 수도 있어서, 그런 가봐요. 아니 더 솔직하게 써봐요.
내일도 봐야 하니까, 그들이 필요하니까, 잘 보이고 싶으니까, 친해지고 싶고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래야 한 명의 동료로 봐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차갑고 냉정한 이성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경험상 이게 맞아요. 저는 일을 잘하고 똑 부러지면서, 밝고 명랑해서 가끔 실수해도 귀엽게 넘어갈 수 있는 신입 사원이어야 해요.
사람은 어떻게 친해지나요?
문득, 고등학생 1학년 1학기 첫 수업이 떠올라요. 막막했어요. 반에 친한 사람 하나 없었고, 다들 나보다 크고 이미지가 강했어요. 정말 막막했어요. 하지만, 한 학기가 지나니까. 친구가 되었고, 학년이 끝나니 헤어지기 아쉬운 사이가 되어버렸죠.
대학생 때도 그래요.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잔뜩 있어요.
맞아요.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경험이 말해요 생각보다 별거 없다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요. 저는 죽어가고 있어요. 원래의 나를 잃어가고 있는 거죠. 당당하고 생기 있고, 감정 풍부한 나는 가면을 써요. 음침한 어두운 내면은 숨기고 나의 강점만을 나라고 꺼내어요. 잘하고 있어요.
신입 사원 중에서는 최고일 거예요 다시 한번 말할게요. 저는 죽어가고 있어요. 시한부는 아니죠. 그렇다고 스스로를 죽이려는 거도 아니죠. 저는 오래 살고 싶어요. 제가 삶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하지 오늘 일을 말해 볼 게요.
선박에는 기본적으로 항해를 하며, 견시하는 공간인 브리지가 있어요. 그곳에서 당직 항해사들이 4시간에 한 번씩 교대하며, 국제 해양교통법규에 따라 운항해요. 그리고 그 브리지 위에는 선박의 상태를 알려주는 항해등과 신호를 보내는 SIGNAL LIGHT가 있어요. 선박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불빛의 색으로 우리 선박의 상태를 다른 표현해요.
저는 기관사예요. 항해사는 항해를 하고 기관사는 기관을 유지 보수 하며 운항할 수 있게 해요. 오늘은 그곳 항해등에서 정비해야 할 장비를 검사했어요. 선박 기관사는 그런 일도 해야 하죠. 정말 높은 곳이었어요. 아찔하죠.
제가 그곳에서 두려웠던 이유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서 일 거라고 믿어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 걸요.
케리비안 해적에 나오는 선박 마스트는 쨉도 안 되는 높은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죽음의 두려움과 360도로 펼쳐진 망망해를 봤어요. 그리고 우리 배를 내려다봤어요.
두려움과 차오르는 감동과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정말 마음 굳게 먹었는데, 그래도 집에 가고 싶네요. 아무것도 안 하는 일상에서 누구의 눈치도 간 도 없이, 하루 푹 자고 다음 날 오전부터 책을 읽다가 저녁을 먹고 싶어요.
얼마만에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는 건지, 얼마 만에 글을 쓰고 있는 건지, 까마득하네요. 4주 그 정도 되었을까요? 제가 마지막으로 이런 글을 쓴 지가 말이죠.
오랜만에 글을 쓴 계기를 이야기해봐요.
선박 이야기를 하면 선장의 존재는 다들 아실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항해사'라는 존재에 대 해 알고 계시나요? 항해사는 선장님의 권한을 부여받아 당직 시간 동안 선박을 운항해요. 바다나 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여기까지 알 수도 있어요. 당신의 박식함을 칭찬해요.
그러면 선박 기관사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 가요?
아마 생소할 거라고 생각해요. 쉽게 설명해 드릴 게요. 범선 시대처럼 바람을 이용해서 항해를 하지 않아요. 프로펠러, 그리고 엔진 그걸로 선박 은 움직여요. 쉽게 말하면 배가 움직이기 위해서 큰 엔진과 기기들을 다룰 수 있는 엔지니어가 있어야 해요. 24시간 365일 관찰과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죠. 그런 일을 하는 게 기관사예요.
기관사는 Chief, 1st, 2nd, 3rd Engineer 총 4명이 필요해요. 저는 가장 아래 직급인 3d Engineer이 죠. 오늘 1st engineer께서 저에게 문뜩 질문을 하셨습니다.
"성하야 너는 언제 행복해?" 가장 행복한 순간도 얼마나 행복한 순간도 아니라, 그냥 행복에 대해 서 물으시니 무슨 답변을 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고민했어요. 귀여운 꼬마 아이를 보았을 때 행복했고, 남이 버린 쓰레기를 줍는 사람을 보면서 행복했고, 책을 읽다가 행복했는데 말해도 될까 요?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싫어서, 여자 만날 때 행복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거짓은 아니에요. 정말 함께 할 때만큼은 행복했거든요. 스스로의 양심은 속이지 않으면 서 가장 가벼운 말로 상황을 넘어가요. 죽어가는 마음이에요
얼마만에 누군가 나에게 감정을 묻는지 고마워요. 하지만 문득 겁도 나네요. 아직은 아니에요. 너무 이른 거 같아 겁이 나요.
그래서 퇴근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봤어요. 감동적인 영화인데, 또 같은 장면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네요. 묵은 눈물이 많았는지, 우두둑 눈물을 쏟는 저를 거울로 봐요. 그 속의 저는 마치, 잔뜩 쌓여온 언제 쏟아질지 모를 눈물이, 왈칵 넘쳐흐르지 않게 미리 빼내는 거 같았어요.
눈물을 뽑아내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네요.
가여운 나를 아무도 몰라야 하지만, 나는 알아줘야 죠. 우린 한 팀이니까. 가여운 나에게 좋아하던 취미생활을 할 시간을 줘요. 오늘 하루는 공부하지 말고, 글쓰고 놀아도 괜찮다고 허락해줘요.
남몰래 눈물 흘리며, 아직 감정이 살아있음을 느껴요.
남몰래 글을 쓰며, 내 감정을 더듬고, 정돈하고, 위로하네요.
죽어가고 있지만, 죽진 않아요. 늘 그렇듯,
아버지의 말처럼 이 또한 지나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