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들
지난 한 주 동안, 짐을 꾸리고, 필요한 자격증과 교육증서들을 정리하고, 승선 중에 읽을 책들을 구입했어요.
글을 쓰는 오늘은 승선 하루 전입니다. 지금은 출국을 34시간 앞두고 있네요.
선원에게 첫 승선은 나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항해를 다녀오면, 앞으로 은퇴할 때까지 일 년 중 3달 남짓한 시간 정도 육지에 있는 게 전부가 됩니다. 바다가 고향이 되고, 배는 집이 되는 거죠.
사실 이번 한 달의 대부분 작별 인사를 하는 기분이었어요.
육지의 사람들에게는 많은 인사들을 했어요. 친구들을 만나서는 미래와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주로 나누고요. 친척들은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길래,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느라 시간 이 부족합니다. 안식일에 교회에 가니 축복을 빌어주셨어요. 안전한 항해가 될 수 있도록, "그분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해 주십니다. 장로님들은 늠름하게 컸다고 교회의 자랑이라고 저를 띄어주십니다.
검도장의 사람들은 부디 건강하게 잘 돌아오기를 바라고 검도를 잊지 않기를 바라셨고요. 단골 카페의 사장님은 제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아셨는지, 평소보다 더 밝게 인사를 건네시네요. 동생은 "내일 같이 커피 마시자"라고 조르고, 부모님도 덤덤하신 듯 하지만,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염려를 하십니다.
단골 헤어디자이너 분은 "이제 곧 가시는 거죠? 다음에 뵐 때는 장발이시겠네요"라고 하시면서 장발도 잘 어울릴 거라고 해요.
그 밖의 저의 지인들은 대부분 해양 관련 종사자 들이라서 덤덤하게 'Bon voyage'인사를 건네어요. 해양에서는 이를 '안전항해를 빕니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요. 또 살아서 보자는 거죠.
그럼 저는 "바다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대답합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살아서 다시 보기를 바라니, 저는 죽으려 가는 기분입니다. 사실 위험이 따르는 일이니, 마음 한편으로는 싱숭생숭하지만, 지난 5년 가까이를 이 길을 바라보며 왔기 때문에 덤덤합니다.
그런 저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품고 살아요. 다시는 안 볼 수 있기에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다시는 못 볼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 저에게는 더 가깝죠.
하지만, 반성하게 됩니다. 요즘 환절기라 감기에 걸려서 혹은 몰려오는 관심에 거부감이 들어서, 다소 쌀쌀맞게 사람을 대한 적이 있어요. 마음속의 일이지만, 그런 말들이 부담스러웠어요.
떠나는 건 나인데, 사실 누구보다 무섭고 두려운 건 나인데, 그럼에도 위험한 걸 잊고 싶어서 시선을 때려하는 저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말들은 쌓이고 쌓여서 피로하게도 만들고 깊은 곳의 두려움을 상기시켜요. 모르는 척하는 게 겁을 잊게 해 줘서 시선을 돌리고 싶어요.
하지만, 당당히 마주해야 해요.
웃으면서 "꼭 살아서 만나자" 하는 말에는 "꼭 살아서 다시 보자고"라는 농담으로 받아쳐주고, "다음 휴가 때 맛있는 거 사줘"라는 말에는 "고마워 꼭 맛있는 거 사주려 다시 올게"라고 해야 해요. 그렇게 하고 싶어요.
검도를 배우면 늘 예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요. 제가 배움이 부족한 지 모르겠지만, 무엇에 예를 갖추어야 하는지는 명확한데 예를 다루는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각각 해석이 다른 거 같습니다. 그래서 늘 고민해 왔어요.
그래서, 제 나름의 고민의 대한 결론은 이거에요. 예는 "사람과 사물에 소중히 여기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종종 사람들을 보면서 감동하는 순간들이 있는데요? 그 순간들을 생각해 보다가 공통점을 찾았어요. 정성을 다하는 것들에서 저는 감동해요. 정성스러운 말 한마디, 정성스러운 음식, 정성스러운 꾸밈 들, 정성이 들어간 것들에 제가 좀 약해요. 그런 것들을 보면, "예의 바르다" 생각이 들어요.
뭔가, 질서 정연하고 정성스럽고 의도한 바를 위해 노력했을 걸 생각하면, 예의 바르다고 생각돼요.
그런 것들과 쉽게 사랑에 빠집니다. 그래서 저에게 예의 바름은, 사랑이에요.
저에게 건네는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저에 대한 관심과 소중히 여김입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작별을 고합니다. 22년도의 일처럼, 제가 그들에게 남길 마지막 모습이 될 수도 있겠죠.
그들과의 만남은 저에게 유언을 남길 기회가 되고요. 제가 그들의 유언을 들을 기회도 됩니다.
22년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던 게 마음에 남아있어요. 시간을 되돌릴 순 없잖아요.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지요. 같은 실수를 번복할 순 없는 거니까. 예의 바르게 작별할래요.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아요.
소중하고 소중한 사람들이여, 그대들과의 만남은 우연한 것이었고, 스쳐가듯 했지만 전부 저에게 남아서 저를 이루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저의 유언이 있다면, 위의 글로 할래요.
여러분이 저의 글을 보시면요. 저는 여러분의 글을 꼭 읽어봅니다. 왕왕 그 글들에 감동해요.
그런 것들도 쌓여서, 저의 삶을 구성하고 있네요.
물론 다시 올 거예요. 바다에서도 인터넷이 된 답니다.
그럼 여러분들도 Bon voy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