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미 사라진 책을 읽는다는 것"
"이 책들은, 이 공간은, 그리고 그 공간에서 우리의 만남은 우연인 거예요."
저는 중고서점에 자주 발길이 가요. 사랑하는 저자들이 쓴 글 중에서, 그분들이 추천하는 책을 읽는 건 그분을 더 이해하게 해 줘요. 하지만 품절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이 중고서점을 찾아요.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중고서점들의 책들은 굉장히 깔끔해요.
아마 전에 읽으신 분들이 엄청 소중히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다 따뜻해져요.
그리고, 그 서점에서는 책을 '한 권 한 권'을 '소중히' 모셔요. 제가 서점에 아끼는 책을 팔아본 적이 있는데,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아셨는지, 귀인을 모셔가듯 데려가셨어요. 너무 인상적이어서, 아쉬운 마음보다는 좋은 주인 만나서 또 누군가의 쓰임이 되기를 바랐어요.
다른 누군가가 소중히 여긴 물건을 구입한다는 건 너무 애틋하잖아요.
저도 누군가의 그 소중한 마음을 이어받아서, 소중히 들고 가요.
얼마 전 제가 첫사랑에게 선물해 버린 <별을 위한 시간>이라는 책을 다시 찾았어요. 품절되어서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던, 그 책을 만나자. 오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웠어요.
이 전에 읽었던 독자의 흔적을 훑으며 책을 살펴요. 이 책의 전 주인은요. 저와 비슷한 습관이 있으신 거 같았어요. 저는 책을 읽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내용을 발견하면, 페이지 상단을 접어서 조그마한 흔적을 남겨요. 다시 읽었을 때, 이 흔적을 발견하면, 그때의 감동을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런 흔적이 많은 책들은 좀처럼 애착이 많아가서, 남에게 빌려주지 않아요. 누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마땅히 생각이 안 나면, 이 표시가 많은 걸로 추천하기도 하고요.
이 책을 읽은 전 주인도 저와 비슷한 습관이 있었어요. 따뜻한 레몬차와 함께 이 책을 다시 만났을 때, 그 흔적들을 만나서면서 그분과 함께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만남이 있었어요.
그런 사랑하는 중고서점에서 어떤 문구를 만났어요.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미 사라진 책을 읽는다는 것"
맞아요. 이 책들은, 이 공간은, 그리고 그 공간에서 우리의 만남은 우연인 거예요. 어쩌면 만나지 못했을 우리가, 이미 사라졌을지 모를 네가, 어쩌면 너를 만나지 못했을 내가, 우연히 만난 거예요. 이 광활한 우주에서 말이죠.
이 문구를 너무 사랑해요. 이 서점을 사랑해요. 그날의 우연을 잊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