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곳에서

하나의 능선을 넘어서 다시 죄절을 맛보는 듯 하지만, 이내 일어선다.

by 푸르른 선망

하나의 능선을 넘어서…


초임으로 승선 그리고 한 달 반의 시간이 흘러, 하나의 능선을 넘어선 기분을 느끼고 있어요. 오늘은 늦은 아침을 시작하고, 익숙하게 계획했던 일을 기계처럼 척척 해 나갑니다. 하나씩 차곡차곡, 배우고 따라잡으려 했던 나의 열정은 이미 연료를 다 하여, 시체처럼 하루를 시작하지만, 관성에 의해 아직도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기계처럼 말이죠.

번아웃, 요즘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번아웃이 학술적, 언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화로에 장작을 한껏 넣었더니 큰 불이 일어나고, 이내 불길이 죽어가는 모습이 이 기억나요.

요즘 연상되는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그 장면만 생각해요.

그런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요.

마치, 나의 상태를 나타내는 듯하여, 죽어가는 장작불이, 언젠가 보았던 그 장면이 하루 종일을 따라다니는 듯해요.

그런 장면을 볼 때면, 대체로 괜찮은 듯하다가, 감정이 위태로운 날이면, 서럽기도 하고,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다가,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생각에, 미련한 지난 나를 미워할 수 밖엔 없어집니다.

그런 순간이 오면, 너무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나는 일을 하는 거라고 상기시키고, 이 길의 첫걸음을 땐 어린 나를, 탓하지 않고 그럴 수 있지라며, 다독여요.

지금의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아요.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초임 사관은 당연히 힘들 것이고, 실습을 나갔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원하던 것들을 이루었어요.

하나의 능선을 넘어서, 더 이상 다다르지 못할까 하는 대한 불안 감이 아닌, 잔뜩 쌓인 해야 하는 일들의 절망감을 맛보는 것이, 더 괜찮을 거니까요.

승선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느 하루, 누군가의 그 말을 기억해요.

“나도 초임 때, 제일 열심히 했던 거 같아. 그런데 그럼, 금방 번아웃이 와버려”

“내가 보기에 네가 오버 페이스로 달리는 거 같아. 물론, 나도 그래서, 도움이 많이 됐지만, 몰라? 네가 알아서 해”

한껏,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시다가 장난으로 시작한 말처럼 급하게 노선을 변경하셨어요. 아마, 해주고픈 수많은 말 중에 하나 정도 나온 것이지만, 그 마저,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하여, 못한 말. 그 말의 의중을 알아요.

그의 하다 만 듯한 조언을 매 순간 생각했어요. 한때는 그에 대해서 이런 생각도 했어요. “나는 절 때 번아웃 같은 거 안 와, 난 워크 홀릭 이거든,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아”

지금은, 그 미련함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지난날들을 열심히 보낸 것에 대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합니다. 정말 하루를 보내기 힘든 건 아니 예요. 지난 한 달에 비하면, 이렇게 글을 쓸 시간도 있으니 말이에요..

하루는 어렵지 않아야 해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할 일을 찾아 하나씩 끝낸다. 남들보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기관장님과 단 둘이 먹는 아침밥, 간단한 양치만 하고, 먼저 도착하여 하루를 계획하고, 커피 한 잔과 담배 한까지의 여유를 즐기다가, 일찍 일어나는 동료들에게 한 명씩 인사를 건네는 07시 30분, 나의 할 일을 보고 드리고, 확인받고 일과를 수정하는 07시 50분, 정말로 진중한 회의 10분 그리고 잠시 농담들이 오가는 3분 그리고, 시답지 않은 농담은 그만하고 열심히 일을 하자고 하는 듯. “슬슬 시작하시죠”라는 말과 동시에, “safety first okay”를 외치는 아침.

적당한 눈치들과, 시간이 부족하기도, 너무 느리기도 한, 오전 일과.

다들 일찍 할 일들을 끝낸, 오전 11시, 동정 보고를 준비하고, 식사를 시작하는 11시 50분의 취향 모를 노래가 울리면, 왠지 모를 압박을 느끼며 점심 식사.

식사가 끝난 12시 08분, 딱 30분에 내려가자는 다짐과, 조금만 더 쉬고 싶은 욕구의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돈 버니까,라는 말과 함께 명분 없는 쉬는 쪽은 꼬리를 내리고 ‘월요일 좋아’ 노래를 부르며 영혼 없이 내려갑니다. 아니? 이 시간이 어쩌면 하루 중에 가장 생기 있는 시간이기도 해요.

다시, 12시 30분부터 리포트를 작성하고, 보고 그리고, 수정하고, 하루 일과를 끝내고, 5시 일과를 끝내고, 서류 작업을 하고, 5시 30분 식사를 하고, 식사 후 간단한 담화 후에 퇴근이다.


퇴근하면, 급격한 외로움이 쏟아져, 다시 일을 하려 가거나, 운동을 하려 가거나, 책을 읽어요.

그러다, 문득 시간을 보면 잠을 자야 하죠.

눈을 감는 순간에는 내일 무슨 일을 할지 몇 시에 일어나야 할지, 빠뜨린 일은 없는지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가, 이내 메모를 하다가 다시 잠에 들다가, 꿈도 꾸지 않고 다음 날 아침으로 이동하듯 다시 시작돼요.


하루가 어렵지는 않아요.

다만 반복되는 이 일상이 버거운 거예요.

쉬지 않고 계속되는 이 일상이 얼마나 계속될지 막막해요.

직장을 잘못 구했나 싶기도 하다가, 다른 일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아요.




저도 알고 있어요.

조금 쉬어야 하고, 조금은 더 편하게 사람들을 대해도 좋아요.


일과가 끝나면, 꼭 푹 쉬고 일 생각하지 말고, 잘 자고, 잘 일어나서 내일의 내가 처리하기를 믿어주면 되는 건데….. 쉬는 방법을 까먹어 버렸어요.

쉬는 법을 까먹었어. 맞아요. 이게 이유예요.

어떻게 쉬는 건지. 잊었어요.

저는 책을 좋아했고, 작가들을 좋아했고, 상상력을 즐거워했어요. 솔직한 글을 좋아했고, 아름다운 찬란의 감정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쿵쿵 뛰는 가슴을 잊은 것. 밝은 눈빛을 잊은 것. 머릿속의 안개를 깨우는 거. 잊지 않고 매일 책을 읽는 것. 매주 새로운 책을 보는 것. 마음을 정돈하려 검도장을 가는 것. 가끔 요리를 하는 것. 친구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는 거. 전부 잊었어요.

저의 예언처럼 되어버렸네요. 전부를 잊을 거라고 생각해서, 이 순간을 위해 그 많은 밤들을 새웠는데, 그것마저 잊었어요.

기억해야 해요. 나를 다시 찾아야 해요.


그 눈으로 다시 보고, 그 가슴으로 울고 웃으며 살아야 해요.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