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망각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날들이 영원히 지워질까?
호주 해역을 지나 적도로 올라가던 때의 일이에요. 실수로, 제 아이폰 icloud 기능을 꺼버렸어요. 그래서 계정의 데이터가 어디론 가 사라져 버렸어요. 그건, 더 이상 지난 3~5년 전 사진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 우주에서 그 시간들을 볼 수 없다니 참담한 심정이에요.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지난 5년 전 저는 사진을 모두 잃었죠. 그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sns을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또래 남자아이들은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저의 모습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소녀들이나 할 만한 아기자기한 짓을 하는 나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짓궂은 태도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여행을 다닐 때면, 사진을 찍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업로드했어요.
그 SNS 계정이 있음에도 끝내 아쉬운 건, 게시물 속 사진과 글, 그 위에 있는 우리의 업로드 못할 비하인드 스토리가, 사라져 버린 것이죠. 이걸 염두에 두지 못한 게 후회가 되네요.
이런 생각은, 곧바로 간직하고 싶었던 순간들의 기억들을 더듬는 트리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신기하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닫고, 조금 노력하여 그날의 온도와 냄새를 기억하려 하면, 그 장소의 모습을 보여줘요.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아직 작은 키의 시선으로 바라본 교실의 어느 하루 평범한 날이었어요.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소란스럽던 여린 목소리들이 조용해지지만, 아직도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20살 처음 친구들과 처음 갔던 해운대 광장이 떠오르네요. 해운대 모래 위에서 약간 살살한 바람과 3~4명의 친구들, 알딸딸한 기분, 신발 속에 모래의 존재감.
바닐라 빛의 오늘 하늘과 같이 아늑한 기분이네요.
기억에 대해서
리사 제노바의 “기억의 뇌과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알게 된 이 책의 존재로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 기억의 재구성 등. 사색의 재료를 수집합니다.
기억의 선명함에 대해서 이야기해 왔지만, 정작 기억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었는지, 반성하는 기분으로 새록새록 알아갑니다.
기억에 관한 책을 읽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 대한 내용도 전부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도 응당 잊을 것을 염두에 두었다며, 기억할 필요 없다 하네요.
망각. 책의 끝을 바라며 말미에 어떻게 끝날까. 떨리는 가슴으로 한 페이지 씩, 넘겨갑니다. 좋은 책들은 꼭 이렇게 결말이 궁금해서 설레게 합니다. 잊어지는 서론을 붙잡기보다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게 만드네요.
요즘 승선을 하면서도, 더 이상 외롭고, 피로하고, 막막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어요. 무언가 희망이 생겼다고 말해두고 나중에 천천히 글로 풀어볼게요
주의 깊게 보려 하지 않았던 것
이 책 중에 기억에 남던 한 문장이 있어요.
“애초에 주의 깊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 기억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세상이 선명해진 것에 대해서, 한 발 진보한 기분입니다. 응당 당연한 말이고, 학교를 다니며 어쩌면 수시로 들었을 이 의미를 주의 깊게 보려 하지 않았기에 듣지도 못하였던 거 같네요. 스스로를 부정하는 기분입니다.
그토록 기억하고 싶은 기억들은 사실 기억이 만들어지지 않은 거라면,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더라면, 이젠 찾을 기억의 방이 없어진 걸까요?
사실 정말 기억하려 했었을까요?
아니면, 시간을 흘려보냈을까요.
우리의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날들이 영원히 지워졌을까요?
우리는 무엇을 망각하고 있을까요.
카메라에 의존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