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믿음

요나단과 두려움

by 강성호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인생을 살면서 두려움을 전혀 모르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동양에서부터 서양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헌과 성현들이 두려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대답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들이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가정과 팀을 잘 이끌 수 있다는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야구팀 중 한 팀은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롯데 자이언츠입니다. 이 팀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8개 팀 중에서 8,8,8,8,5,7,7등을 했습니다. 최하위의 성적이 7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팀의 선수들이 연습을 적게 하거나 훈련양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새 감독이 올 때마다 다른 팀들보다 더 많이 연습시키고 더 많이 혼냈는데도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선수들의 자질도 특별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년 꼴찌를 하면 항상 가장 좋은 선수들을 드래프트에서 뽑아서 계약할 수 있기 때문에 이 팀은 7년 동안 가장 좋은 선수들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팀의 성적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2008년에 미국에서 코치를 하던 외국인 감독이 부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팀은 그동안의 부진을 끊고 시즌 3위의 훌륭한 성적을 얻게 됩니다. 그때 감독이 선수들에게 주었던 메시지는 단 한 마디였습니다. No Fear.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타석에서 헛스윙 삼진을 당하든, 투수가 홈런을 맞던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가 던진 메시지를 저의 말로 풀어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경기장에서 싸워라. 결과는 감독인 내가 책임진다. 두려워 도망가는 것이 가장 나쁜 행동이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건 어떤 경우라도 괜찮으니 움츠려 있지 말고 도전하라.


이 말 한마디가 선수들을 달라지게 했습니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소극적이던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하였고 팀의 시즌 최종 성적도 매우 좋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두려움의 문제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역시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려움의 문제에 대해서 아주 분명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잠언은 반복해서 나올 뿐만 아니라 잠언의 처음과 끝이 두려움에 관한 것입니다. 잠언 1장 7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잠언 31장 30절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경외한다는 말은 “두려워한다” 혹은 “존경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떨며 그를 경배하는 것이 경외입니다.


또한 잠언 29장 25절에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이나 돈 영향력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권세나 물리력 혹은 돈으로 자신을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사람들을 보면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그들을 두려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는 꼼짝없이 그들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그것이 우리 자신을 옭아매는 올무, 즉 올가미와 덫이 되어 버립니다.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 그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에게 종속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종속된 상태, 종처럼 매여 버려서 우리 마음의 평안이 깨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언제나 올가미처럼, 사람을 죄어오며 사람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평안을 쫓아내고 하나님 아닌 것을 왕처럼 섬기게 만들어 버립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안전과 우리의 평안과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는 존재가 우리가 두려워하는 바로 그 사람, 그 통치자, 그 세력, 그 돈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올무에 완전히 붙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마치 죽음을 주관하는 것이 사단인 것처럼 생각하며 그 앞에서 무력해질 때가 많습니다. 로마서 5장을 보면 죄가 사망 안에서 우리에게 왕 노릇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단이 사람들을 죄를 짓도록 만든 다음에, 죄의 삯(대가)으로 주는 것이 사망인 것입니다. 죄의 대가로 받은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불의한 권력자를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더욱 사망의 자리, 종의 자리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진정 안전을 소망하지만 가장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만드는 이 종속적인 관계는 사람의 마음을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단은 언제나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두려움을 이겨 내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결과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 하나로 야구팀을 완전히 새로운 팀으로 탈바꿈시킨 야구 감독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두려움을 벗어나 해방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야구 감독이 선수에게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단순히 야구 선수로서 경기를 하는데서 줄 수 있는 제한적인 가르침이라면, 성경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잠언을 비롯하여 모든 성경 말씀은 분명하게 진정한 안전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안전에 대한 보장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며, 여기로부터 죄와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계시지만, 우리가 두려움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처럼 온 세상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문제를 온전히 가져가서 그 발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기보다 힘 있는 사람들을 의지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가장 강력하고 정확하고 옳은 판단은 오직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죄인인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선다는 것은 매우 두렵고 떨린 일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 거하시지 못하시며 죄를 소멸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홀로 그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온전히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피로 우리의 죄를 온전히 깨끗하게 해서 우리에게 완전한 용서를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죄가 사망의 권세로 우리를 떨게 만들며 사람을 두려워하게 만들며 돈과 이 땅의 권세자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온전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으며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하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안식을 얻습니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우리 마음에 채워 두려움이 빈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면, 하나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이야기가 우리 마음에 가득하게 됩니다. 순환논리일 수밖에 없지만,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야기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마음에 간직하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 안에서 구현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은 요나단

두려움의 문제가 우리 신앙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서, 다시 사무엘상 14장의 요나단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요나단은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과 함께 목숨을 걸고 블레셋 진영으로 건너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큰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고,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1]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 용기를 내어 도전할 때, 보세스와 세네와 같은 절벽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그 장벽 앞에 서면 우리는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장벽을 뛰어넘을 것인가? 다시 돌아가 뒷일을 도모할 것인가?

사울 왕도 블레셋에 선제공격을 감행하고 이스라엘에 총동원령을 내려 전쟁의 태세를 갖추었지만, 블레셋 군대의 위용 앞에 주저하게 된 것처럼 요나단도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 바위는 인간의 본성의 심연에 무엇이 있는지 철저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보세스와 세네같은 험한 바위들은 언제나 우리 삶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우리에게 언제나 방해물이 있고 언제나 좌절할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장벽을 만나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변명하기에 좋은 이유를 가지게 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어섰지만 장벽에 막혀 되돌아와야 할 때, 우리의 속마음은 그 장벽들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휴~!! 저 바위들이 아니었다면 죽을 뻔했는데, 저 바위들 덕분에 공동체에 돌아가 할 말이 생겼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것이 우리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죄악된 본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가장 중심에 두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안전과 영광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어섰다면 장벽을 만나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장벽들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장벽에 막혀 가지 못한다 하여도 그 결정의 중심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존재에 의해서 우리 자신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로 우리를 위협하는 사단과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에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두려움은 우리가 누구를 신뢰하며 믿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신뢰하는 분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2]


요나단은 거대한 장벽 앞에서 분명하게 얘기하였습니다. 이 장벽이 가로막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장벽을 두려워하지 않고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갈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의 신앙은 이 위기의 상황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 것이란 말속에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 품고 있는 하나님의 이야기는 요나단의 삶을 통해서 구현되었습니다. 자신을 위협하는 것들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두려워하고 그 힘 앞에 굴복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허공을 맴도는 공허한 말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박은 땅으로 내려온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구현된 사람이 이 땅 가운데 찬란하게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하나님의 사람의 면모가 될 것입니다.


[1] 개역개정, 사무엘상, 14:4.

[2] 개역개정, 사무엘상,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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