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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성호 Apr 02. 2020

추신수의 기부에 대한 사회적 묵상

<사회적 성공의 목적>과 삶에 주어진 소명: 이영미의 인터뷰를 읽고

1.

1994년 과학고등학교 1학년의 4월은 저에게 무척이나 절망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3월부터 다친 허리와 지독한 장염으로 공부하는 시간보다 기숙사에서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고, 생활비마저 통장에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외삼촌의 도움으로 김장하 이사장님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김장하 이사장님은 사비를 들여 설립한 고등학교를 국가에 기부하신 분이었고, 진주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김장하 선생님은 진주에서 누구나 안다는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9세의 나이에 한약종상(현재의 한약업사) 면허시험에 합격해 한약방으로 큰돈을 버셨다고 합니다. “아픈 사람들로부터 번 돈으로 호의호식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본인이 번 돈을 사회에 돌려주기 시작하셨는데, 그중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사비로 건립한 명신고등학교를 국가에 기부한 일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장학사업과 지역 문화를 위한 뜻깊은 일들에 많은 기부를 하셨습니다. 



당시 대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던 김장하 이사장님은 고등학생인 저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이미 말씀하셨지만, 외삼촌의 간곡한 부탁에 한 번의 만남을 허락하셨습니다. 지금도 4월의 토요일 오후에 그분의 한약방 사무실에서 이사장님을 만났던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사무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소파에 앉자마자 저의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간 것이 아닌데 갑작스럽게 그 말을 들었기 때문에 놀라는 마음이 우선 들었습니다.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을 하실 때, 저는 우리 사회에 이런 어르신이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실상 처음 보는 저를 돕겠다고 약속하실 때 느꼈던 따뜻한 마음의 소중함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2. 하나의 선한 행동이 한 사람의 마음에 끼친 영향


오늘 이영미 기자의 인터뷰에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메이저리그의 베이스캠프와 시즌 일정이 중단되어 어려움을 겪은 한 야구 선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등록되지 않은 마이너리그 선수는 리그와 노조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추신수가 속해 있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엘리 화이트도 그중에 한 명이었고, 추신수와 포지션이 겹치는 외야수였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스프링캠프에 초청받은 마이너리그 선수에게 캠프 중단은 오랫동안 기다려서 찾아온 기회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기 때문에 좌절감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닥친 경제적 어려움은 야구 선수로서의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그의 가정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되었을 것입니다.


엘리 화이트의 상황을 알게 된 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에 소속된 모든 마이너리그 선수(190명)에게 1,000불씩 기부했고, 텍사스 구단이 매주 자신에게 지급하는 밀 머니(meal money, $1,100 per week)를 엘리 화이트에게 지불하도록 요청했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행동을 돈 많은 선수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처럼 여기겠지만, 오랫동안 추신수를 보아온 팀 동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행동에 대한 해석은 그가 살아온 삶의 총체적인 모습에 의존하기 때문에, 추신수의 진심은 팀 동료들에 의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엘리 화이트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나를 포함해 마이너리그에 있는 190명의 선수들에게 1인당 1000달러씩 개인적으로 기부하겠다고 나섰고, 특히 나한테는 그 돈 외에도 매주 자신한테 지급되는 밀머니(meal money, 1100달러)를 야구가 중단되는 동안 내게 모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이 경제적인 면에서 도움을 줄 테니 야구와 가족에게 집중하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경험이었다. 돈을 많이 버는 메이저리그 선수라고 해도 모두 추신수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캠프 때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위해 식사 대접을 한다. 클럽하우스에서 코치들, 물리치료사, 트레이너, 맛사지사, 매니저들의 복지를 위해 가장 먼저 앞장서는 선수다. 그들과 밖에서 따로 식사하고 어울리고 생일 선물을 챙기는 모습에 상당히 놀란 적이 있었다. 그가 쌓아온 야구 커리어도 대단하지만 인간적으로 배울 점이 많은 선수다.”


그는 추신수가 도와주겠다고 말할 때, 그가 느낀 마음이 엄청난 경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나에 대한 기대를 품고 나를 돕겠다고 말할 때에 형성되는 특별한 마음이 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의 감동과 벅찬 기쁨이 생길 뿐만 아니라, 열심히 살아야 할 삶의 목적과 이유까지 강하게 인식할 수 있는 놀라운 경험입니다. 추신수가 단순히 돈을 기부한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선한 영향력을 엘리 화이트에게 끼친 것입니다. 추신수가 이영미 기자와 나눈 대화가 이를 더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엘리 화이트는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다. 올 시즌 마치고 내가 텍사스에 남을지 떠날지 알 수 없지만 만약 내가 없다면 그가 빅리그로 콜업돼 실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 선수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어 내가 더 기뻤다. 그가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좀 더 야구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3.

우리의 삶에서 이런 만남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저에게는 김장하 선생님과의 만남뿐 아니라 다른 많은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축복도 소중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제가 그와 같은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더욱 값진 일입니다. 그것이 한 개인이 사회적 성공이 필요한 이유를 가장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돈이 많은 추신수가 마이너리그 선수를 도왔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선한 행동에 대한 더 깊은 사회적 묵상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References: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80&aid=0000001380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7875

http://m.yes24.com/Goods/Detail/25789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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