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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성호 Dec 13. 2020

복있는 사람

“정말로 복이 많은 삶”에 관하여


한국에 돌아와서 셋째 누나 집에 갔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 장례식 마지막 날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막내이자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저는 가족들에게 큰 숙제와 같았습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누군가는 저를 돌봐야 했기에 장례식 마지막 날 밤에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대화를 저는 마당에서 서서 듣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불던 겨울밤에 가족들 모두에게 큰 숙제가 되어버린 저 자신을 마당 한가운데에서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때 밖에서 가족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는 말을 누나에게 했을 때, 누나는 그때 화가 나지 않았는지 제게 물었습니다. 원망이나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차가운 겨울바람을 느끼며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그 순간에 원망이나 불평이나 억울한 마음은 전혀 생기지 않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한 가지 사실만 분명하게 인식되었습니다. 마치 그날의 차가운 바람이 제게 알려준 것처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는 내 인생에 일어나는 어떠한 일에도 감사해야 한다. 누구도 책임져 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원망과 불평과 억울함이 터져 나오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그 순간에 왜 감사에 대한 마음이 생겼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성경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영은 루아흐(רוּחַ rûaḥ)인데, 이 단어의 문자적인 뜻은 바람입니다. 그 밤의 차가운 바람이 성령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날 밤 하나님의 은혜가 제게 임했다는 것은 분명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그 은혜를 인식할 수 있는 삶이 정말 복이 많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말 넘치도록 많은 복을 받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받은, 그리고 현재 받고 있는 복을 생각할 때마다 겨울바람이 불던 밤에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던 저 자신을 떠올립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 떨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제가 복이 많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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