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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Nov 18. 2019

열등감.

에릭슨(Erikson, E)

신뢰감 vs 불신감 (0~1세)

자율성 vs 수치심 (1~3세)

주도성 vs 죄책감 (3~5세)

근면성 vs 열등감 (5~12세)

정체감 vs 열등감(12~19세)

친밀감 vs 열등감...

생산성 vs 열등감.......


8단계는 아직 거치지 않았기에 pass

대학에서 간호이론을 배울 때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이 나왔다.

시험에 자주 출제되었고,

프로이트와 피아제, 콜버그의 이론과 함께 연결해서

알아두어야 했기에

표를 만들고 달달 외웠던 부분이다.


4단계 5~12세의

'열등감'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뇌리를 스치는 반갑지 않은 풍경이 있다.



국민학교 1학년 음악시간

"자 여러분 준비물 다 챙겨 오셨죠~"

담임 선생님의 말에

모든 아이들이 조그만 주머니를 꺼낸다.

캐스터네츠, 탬버린, 트라이앵글이 들어있는 주머니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가방을 뒤진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다.

어제 준비물을 챙겨 오라는 전달사항을 들은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이 아이들은 악기를 챙겨서 올 수 있었을까?

선생님의 풍금소리에 맞추어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세상이 나를 엿 먹이는 것일까?'

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할 어린 나이이지만,

40분의 음악시간 동안 시선 둘 곳 없이 방황했던 그 날이 기억난다.


며칠 뒤 미술시간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꺼내는 짝꿍이

신기하다. 선생님이 다가와 스케치북을 한 장 얻어

나에게 준다. 크레파스도 빌려 쓸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다양한 색상을, 원하는 만큼 사용할 정도의 뻔뻔함이 없다.

닳을까 걱정되어 크레파스를 쥔 손에 힘도 주지 못한다.

한 가지 색으로 그려진 그림, 하얀색 스케치북 위를 힘 없이 지나는 선들,

미술치료를 받았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아동이 되었을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방 안에는 준비물이 적힌 통신문이 들어있었다.

갓 입학한 국민학생의 가방 안에 선생님이 일일이 넣어 두었던 것인데,

밤늦게 까지 장사하는 부모님이 가방 안을 확인하고,

준비물까지 채워 넣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학령기의 시작부터 나는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열등한 학생이었다.  그런 열등감과 결핍이

지금의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여러 가지에 도전을 하지만, 공식적인 인증이 되지 않는 것은 피하게 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인정해 주는 인증서가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흥미 있는 주제라도 수료증이 나오지 않거나 자격증과 관계없는 것에는 시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일처리의 꼼꼼함도 그렇다.

'타고난 꼼꼼함'이 아닌 '열등감을 채우기 위한 꼼꼼함'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상상 못 할 스트레스와 함께 두통이 찾아오게 된다.


한 달 전에  신청한 자격증을 오늘 받았다.

정신건강간호사 2급에서 1급으로 승급을 한 것이다.

자격증을 받으면, 한 시간 정도 기분이 좋다.

시간만큼은 열등감이란 놈이 작아진다.

근면한 아이가 되어 스스로를 칭찬한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

뿌리 깊은 열등감이 다시 올라온다.


친구들은 말한다

'너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 것 같아.'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 척할 뿐이다.

열등감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기 때문

그저 그렇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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