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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Jan 03. 2020

새해 첫날 근무

액땜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함.

저 그냥 죽을 테니까 찾지 마세요.

뚜~뚜~뚜~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갑니다.>


외출 후 귀원을 하지 않던 환자와 어렵사리 전화연결이 되었는데

자살할 것이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휴대전화의 전원까지 꺼버려 병원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119에 신고를 했다.

'이러이러한 환자가 있는데 자살하겠다는 연락을 끝으로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십여분 후.


"## 경찰서 실종 수사과입니다. ###환자에 대해서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 경찰서입니다. 공조 요청을 받아서 ###씨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119 상황실입니다. ###씨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 맞죠?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경찰서 $$ 지구대입니다. 실종신고 접수된 ###환자에 대해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지구대 입니ㄷㅏ........~~~~~~~~~~"

"~~~~~~~~~~~~~~~~~~~~~~~~~"


16군데쯤에서 전화를 받은 듯하다.

"최근 외출 시 음주가 잦았고, 여러 가지 문제에 엮여 있음에도 다시 술을 마신 것에 대해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몇 시경 자살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로 요약되지만, 실제로는 더 길고, 여러 가지 정보를 포함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말해야 했다.

실종 및 자살예고에 대해 신속하게 공조를 이루는 모습에 감탄을 느끼기도 했지만

기타 추가적인 내용에 대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위의 환자는 자살 고위험자 아니다.

반복되는 음주와 실수로 인한 죄책감과

보호자와 치료자에 대한 면목없음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대신하려 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119에 신고하고 새해 첫날부터 여러 사람을 고생시킨 나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서는 한 점의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없다.


음주상태에서의 자살사고는 특히나 위험하다.일반적으로 자살 고위험자는 방법이나시점에 대해 명확한 계획을 세우는 반면 음주상태에서는 충동적으로 자살이나 자해를시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초 신고 2시간여 만에 환자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고,

구급대와 경찰이 출동하여 환자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경자년 첫날

어디선가는 떠오르는 첫 해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을 그때,

인근 지역의 경찰서와 지구대, 그리고 여러 소방서의

수많은 히어로들 덕분에

그 한 사람은

지금 아주 잘 살아 있다.

비록 주치의와 보호자에게 매일 같이 잔소리를 듣고 있지만 말이다.


###님!

극단으로 내몰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 여겼던 그 순간에.

모텔방구석에서 삶과 죽음을 고뇌하며, 혼자라고 느꼈을 그 시간에.

당신 하나를 위해 움직였던

수많은 손길과, 그만큼의 눈길과, 그보다 더한 마음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이러고 보니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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