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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Dec 20. 2019

중독과 동행하는 당신에게

고속버스터미널의 화장실

간, 신장 010-####--####.


"직장인이시면 5000만 원까지 빌려드립니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대출 전화.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를 외치며 조그만 휴지를 나눠주는 사람들.


우체통에 수북이 쌓여있는 전단지들.



'장기이식이 필요한데 이런 곳에 전화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놈의 대출 전화는 언제까지 오려나?'

'이방식으로 전도가 되나?'

'이 쓰레기 같은 전단지들.'


이라고 보통은 생각하지만

정말 급한 사람에게는 전화를 걸게 만들고, 대출 조건을 물어보게 되고,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를 보면 폭풍오열을 하기도 하고,
때 마침 필요했던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




"이런 시스템은 더 이상 치료적이지 않아요"

"여기가 무슨 여인숙도 아니고"


중독병동에 근무하는 치료자라면

한 번쯤은 다 해보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들이 만성으로 굳어져 버리면

환자와 나를 분리하기도 하고,

(료자가 아닌 직원이 되거나)

병원과 나를 분리하기도 한다.

(이직을 하거나 정신과 자체를 떠나는 경우)


간호사의 사명을 포기하는 치료자를 탓할 수 도 없고,

퇴사를 결정하는 치료자를 탓할 수도 없다.

나 또한 겪었던 과정이고,

일련의 과정 이후에 단련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힘들고, 속상하고, 답답한 감정들로

매 근무를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후배들에게 12년 차 간호사의 깨달음을 주입시키기도 힘들고,

주입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는 대출 전화처럼, 휴지를 나누어주는 기독교인처럼,

하루의 수천 장의 전단지를 돌리는 자영업자처럼 되어야 한다.


백통의 전화가 한 건의 대출로 연결된다는 보장도 없고,

천통의 휴지를 나누 준다고 한 명이 전도되는 것도 아니고,

수천 장의 전단지를 돌려서 한 명의 고객과 연이 닿아도

반드시 그 고객이 물건을 사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도

그들이 영업을 멈추지 않는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한 번의 눈빛, 옅은 미소,

별것 아닌 공감, 일상의 걱정

작은 배려 등 바닥을 치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구원의 손길이 되기도 하고, 부처님의 미소가 되기도 한다.


억지로 손목을 잡고 끌어간다면 연행이 되겠지만,

내민 손을 맞잡고 끌어준다면 동행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손을 내밀고 있어야 한다.

때마침 잡을만한 손이 필요누군가를 위해.



치료자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중독에게 빼앗긴 모든 이들에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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