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가민가한 문제가 많았지만
약간의 운이 보태어진다면
합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실 합격 수기를 쓰려고 자료를 많이도
모아뒀다. 어디서 발급되는 자격증인지
이 자격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목조목
자랑하려고 했다.
오늘 불합격 메일을 확인하고
참 쓸데없는 짓을 했음을 느낀다.
많은 시험에서 떨어져 봤지만 이번 건은 타격이 크다.
올 4월부터 시험을 칠 자격이 있음을 국제기관에 확인시켜주는 작업을 해야 했고,
(처음 발급하는 영문 재직증명서의 단어 하나 하나로 담당 직원이 애를 먹었다. )
추가 교육 및 시험을 치기 위해 서울을 두 번이나 다녀와야 했다. 몇십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소중한 연차를 사용해야 했다.
한국에서 처음 치러지는 시험이라 관련 자료가 부족했고, 간호직이라 안 그래도 상담이론에는 약한데 한국어로 번역된 시험문제는 말귀를 알아먹기 힘들었다.
그래도 정신과 밥을 십 년이나 먹었고,
정신보건과 중독자격도 가지고 있기에
합격을 기대했었는데
국제표준에 미치지 못한 내 실력에 화가 난다.
1점이 부족했다.
합격과 불합격을 나누는 것은 단 한 문제였다.
2008년 겨울.
간호사 국가고시를 치고 나서 당연히 합격하리라 생각했다. 예상처럼 합격통지를 받았고, 점수 따윈 궁금하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밥을 먹으며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똘똘 뭉쳐 나갔다.
2017년.
보건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국시원에 접수하는 과정에서 십여 년 전 간호사 국가고시 성적을 보게 되었다. 총점 확인 후 과목별 점수를 확인하는데 아동간호가 턱걸이 점수였다.
한 문제가 더 틀렸더라면 과락을 했을 것이고,
나는 간호사 면허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재수를 했을 수도 있지만, 두 번째에 반드시 합격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십 년 동안 당연한 듯이 가지고 있었던 간호사 면허증에 대해 감사함이 생겼다.
(밥 먹고 살게 해 줘서 고마워 ^^)
돌이켜 보니 운이 좋았다.
해고를 졸업하고
항해사가 되진 못했지만 고등학교 성적이 좋아 간호과에 특차로 합격했고,
(정시였다면 떨어졌을 것이다.)
한 문제 차이로 국가고시에 붙어서
간호사질을 해 먹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한 끗 차이로 실패했다.
다음번에는 한 끗 차이로 성공할지도 모른다.
이후에 얻게 되는 성공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음을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