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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Sep 27. 2020

안전속도 5030

복돌이 시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복돌이'입니다.  촌스럽죠?

4년 전에 만난 지금의 주인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 대만에서 잠깐 살다

십 년 전쯤 한국으로 왔습니다.

사실 6년동안 오토바이 매장 구석자리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먼지가 겹겹이 쌓이고, 엔진의 열기마저 기억에서 흐릿해질 즈음

지금의 주인을 만나게 되었지요.

그렇게 쓸쓸히 녹슬어 가던 저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보니,

어떠한 촌스러움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답니다.


저는 연비가 참 좋습니다.

기름 냄새만 맡아도 달릴 수 있을 정도라고, 샾 주인이 말했습니다.

주인의 선택을 받게 된 것도 이 장점 덕분이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평지기준으로 최대속도가 50km/h 밖에 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나 오르막길이 많은 부산의 도로는 치명적입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주인이 저를 버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다시 구석진 자리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이런 저를 위해 대안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오르막길을 피해 주고,

큰 차가 쌩쌩 달리는 큰길을 피해 아기자기한 골목으로 저를 인도했습니다.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창고에서 처박혀 있던 세월을 보상받듯

부산의 날씨는 너무 좋았고, 주인의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

.

.

그러던 어느 날,

한적한 도로의 가장자리를 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옆을 지나는 자동차들이 하나 둘 클락션을 울려되기 시작했습니다.

최대 속도인 50km/h로 주행하고 있었지만,

70km/h로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의 마음엔 들지 않았나 봅니다.

겁주는 것을 경쟁이나 하듯, 마치 '이 도로는 네가 올 곳이 아니다'라고 가르치듯

그렇게 그들은 저를 몰아붙였습니다.

차량의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스레 

도로를 달리던 저의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던 것이었지요

주인의 손바닥이 축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빨리 달리지 못하는 제 마음도 축축해지고 있었습니다.

제한속도가 70km/h라는 말이 70km/h로 달려야 한다는 말이 아닌데

저들에게 비쳐지는 저는 그저 갈 길은 막고 서있는, 치워버려야하는, 혼내줄 필요가 있는 그런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영겁 같던 시간이 지나고 도로의 끝이 보였습니다.

끝에 보이는 신호에서 우회전을 하면 평소에 자주 다니던 골목길이 나오게 되니

조금만 더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등 뒤에서 다가오는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뒤이어 주인의 무릎을 스치고 지나가는 회색 자동차가 보였습니다.

주인의 옷에 묻어 있는 선명한 흙먼지가

얼마만큼 위험한 순간이었는지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위협 운전이었는지, 실수였는지 모를

그 자동차의 행동은 아직도 주인과 나에게 선명한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

.

.

그 날 이후로

주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반의, 반의, 반으로 줄게 되었습니다.

출퇴근길을 함께 하자던 약속을 한 달도 채우지 못한 시점이었습니다.

함께 하고 싶다고 고집을 피울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도로는 무서웠고, 그 도로를 달릴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

.

창고의 구석에서, 주차장의 구석으로 자리가 바뀌었지만,

먼지는 쌓이지 않았습니다.

틈틈이 먼지를 쓸어주고, 말없이 동네 한 바퀴를 돌아주는

주인이 있었으니까요.

.

.

.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애물단지 같은 저를 주인은 여전히 챙겨줍니다.

무의미한 동네 마실과 불필요한 청소 거리를 주기만 하는

저인데도 말이지요.

.

.

.

갑자기 바빠진 주인과 오랜만에 동네 마실을 나왔습니다.

10여분이면 끝나는 나들이지만 참 행복합니다.

골목길은 평화롭습니다.

비켜서라고 빵빵거리는 차도 없고, 쌩쌩거리며 위협하는 차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남은 생을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오늘은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닙니다.

다른 코스를 달릴 생각에 콧노래가 납니다.

'아! 이 길은??'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합니다. 이리로 가면 큰 길이 나올 텐데요.

주인 놈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상처가 다 낫지를 않았는데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눈을 질끈 감고 주인의 손길에 나를 맡깁니다.

스쳐가는 바람소리에 어느덧 큰 도로에 접어들었음을 느낍니다.

쌩쌩 달리는 차들,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감은 눈을 살며시 떠 봅니다.


어라? 차들이 천천히 달리고 있습니다.

마치 내 속도에 맞추어 달려 주는 것 같습니다.

차가 막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조화일까요?

주인이 말합니다.


"이제 도로에서 50km/h 이상 달릴 수 없어.

그러니 이제 너도 큰길을 달릴 수 있단다."



올해 5월부터 부산에서 안전속도 5030이 시행되어,

주요 도로는 50km/h, 이면도로는 30km/h로 제한속도가 하향 조정되었습니다.

큰 사고가 날뻔한 경험 이후 스쿠터를 타고 도로를 나가지 않았었는데.

도로의 흐름이 늦춰지니 힘없는 복돌이도 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의미한 주행이 아닌 목적지를 향하는 복돌이가

스쿠터로써의 정체성을 회복한 것이 느껴집니다.

문득 법과 제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달려야 하지만, 달릴 수 없었던 도로를  법과 제도 덕분에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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