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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Aug 11. 2019

어머니의 육개장

육개장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목록에서 꽤 오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메뉴이다.

소고기 국물에 파와 나물이 듬뿍 들어 있어 밥에 비벼먹기도 좋고,

특히 빨간 고추기름이 둥둥 떠 있는 비주얼에 입맛이 돋는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었는데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육개장을 끓이다가 집에 불이 난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육개장은 조리 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그러기에 더 맛있고, 특별한 음식이라고 생각했었다.

고추기름을 내는 과정을 보고는 더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 혼자서 식당을 운영하셨고,  학교를 마치면 바로 어머니 가게로

가서 밥도 먹고 잔심부름도 했었다.

여느 날처럼 하교 후 식당으로 갔다.

"아들 육개장 끓여 놨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첫 육개장이었다.

오랜만에 육개장을 먹는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가

어머니 혼자서 조리하기엔 위험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나왔다.

아들을 위해 지옥불도 마다치 않는 어머니의 모습,

육개장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어쩌면 아버지의 부재를 느꼈던 첫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부산에 내려오면, 어머니가 육개장을 끓여 주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육개장 맛이 예전 같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울컥했었다.

특유의 얼큰함도 짭짤함도 없는 육개장을 억지로 다 비워내고

어머니를 보았다.

누나들은 다 시집가고, 막내아들은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니

집에서는 음식도 잘 안 해 드신다고 다.

20년 넘게 삼 남매를 홀로 키워오신 어머니께

육개장 간이 안 맞다고 타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간이 맞지 않은 육개장을 먹었다.

먹을 때마다, 늙어 버리신 어머니를 보는 씁쓸함도 함께 삼켰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말했다.

"나이가 들면 짠맛을 잘 못 느껴서 소금을 많이 넣게 된다고 하더라.

짜게 먹으면 좋지도 않은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어머니와 대화를 더 나눠보니, 괜한 걱정을 했던 것에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 입맛이 변한 게 아니었다.

퇴화되어 버렸을지도 모를 자신의 미각이 걱정되어 미리 간을 적게 하신 것이었다.

서서히 변해가는 어머니의 음식을 먹어주는 이가 없었으니, 이 잘 맞는지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엄마! 육개장 맛없어. 너무 싱거워."


이렇게 좋아하는 육개장을 밖에서는 사 먹지 않는다.

맛집이라고 찾아가서 몇 번의 실패를 하고 나서는 더 이상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육개장 레시피를 찾아보았다. 과연 내가 끓일 수 있을까 싶다.

어머니의 육개장이 생각 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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