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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Aug 18. 2019

골목길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가봤다.

골목을 돌아 들어가니 살았던 집이 보였다.

차 한 대 지나다닐 수 없는 이 길이 그때는 왜 그렇게 넓어 보였는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어른 걸음으로 30초도 채 걸리지 않는 이 작은 골목이

그때는 내 세상의 전부였다.


골목길 바닥으로 낯익은 틈새가 보였다.

재개발로 뒤숭숭한 골목 풍경이

그 틈을 시작으로 내 어릴 적 풍경으로 변해갔다.

그 틈, 그 갈라짐은 내 장난감들이 살던 계곡이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편을 나누어 전쟁을 하기도,

어떤 날은 서로를 바라보며 평화롭게 지내기했었다.

담벼락 밑에 난 잡초들은 그들의 숲이었고.

때때로 공사를 위해 자재라도 쌓아둔 날이면

몇몇을 추려 새로운 모험을 떠나기도 했었다.


어릴 적 나는 골목의 틈새하나, 잡초 하나까지 고 있었다. 틈새마다 스토리가 있었고,

잡초마다 이름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랬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나이를 먹고, 골목을 벗어나 넓은 거리를 다닌다.

매일같이 다니는 그 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많이 보고, 멀리 본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

어른이 되어 골목을 벗어났지만,

과연 나는  골목보다 넓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확신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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