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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by 비열한백구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가봤다.

골목을 돌아 들어가니 살았던 집이 보였다.

차 한 대 지나다닐 수 없는 이 길이 그때는 왜 그렇게 넓어 보였는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어른 걸음으로 30초도 채 걸리지 않는 이 작은 골목이

그때는 내 세상의 전부였다.


골목길 바닥으로 낯익은 틈새가 보였다.

재개발로 뒤숭숭한 골목 풍경이

그 틈을 시작으로 내 어릴 적 풍경으로 변해갔다.

그 틈, 그 갈라짐은 내 장난감들이 살던 계곡이었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편을 나누어 전쟁을 하기도,

또 어떤 날은 서로를 바라보며 평화롭게 지내기도 했었다.

담벼락 밑에 난 잡초들은 그들의 숲이었고.

때때로 공사를 위해 자재라도 쌓아둔 날이면

몇몇을 추려 새로운 모험을 떠나기도 했었다.


어릴 적 나는 골목의 틈새하나, 잡초 하나까지 다 알고 있었다. 틈새마다 스토리가 있었고,

잡초마다 이름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랬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나이를 먹고, 골목을 벗어나 넓은 거리를 다닌다.

매일같이 다니는 그 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많이 보고, 멀리 본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느껴진다.

어른이 되어 이 골목을 벗어났지만,

과연 나는 이 골목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확신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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