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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Aug 16. 2019

큰누나

사과는 하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다.

집에 손님이 오천 원짜리 한 장을 용돈으로 주셨다.

삼 남매가 함께 지하철역의 동전교환기로 가서 300원씩 나눠가졌다.

남는 백원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가져가거나 불량식품을 함께 사 먹었다.

주 거래처였던 동네 구멍가게에서 용돈을 탕진하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부모님이 장사를 하셨기에 어려서부터 누나들을 따라다녔다.

누나들의 인형놀이를 흉내 내고 고무줄을 잡아주는 깍두기 신세였지만

그래도 누나들 곁에 붙어 있었다.


어릴 적 큰누나는 정말 큰 사람이었다.

못하는 것도 없었고, 겁도 없이 이것저것 들쑤시고 다녀 사고도 많이 쳤었다.

큰누나의 주머니에는 항상 돈이 있었다.

받은 용돈을 모아 둔 것이라고 했다.

얼마를 받았는지, 얼마를 쓰는지를 

뻔히 알았지만

그런 것을 따질 만큼 똑똑하못했고

큰누나는 용돈을 아껴두는 대단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큰누나는 슈퍼 앞 까지 따라온 동생들을 세워 두고 혼자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다.

먹고 싶어 하는 동생들에게 돈을 빌려 주었고

가끔씩 용돈을 받을 때면 빌려준 돈을 회수 해 갔다.

대부분 이자를 받아 갔지만,  선심 쓰듯 이자를 감면해 줄 때도 있었다.


삼 남매가 모두 성인이 되고

어린 시절 이야기 나누다가 엄마가 지나가듯이 이야기를 했다.

동생들하고 군것질하라고 큰누나에게 용돈을 줬노라고

그렇다.

큰누나는 용돈을 모아두던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공동의 용돈을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하고,

심지어 동생들에게 그 돈을 빌려 주고 이자놀이를 했던 사람임이 밝혀졌다.

누나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

엄마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어린 동생들을 큰누나가 돌봐야 하므로

모른척하셨다고 했다. 사실 연년생이라 다 고만고만했지만 엄마에게는

부모로서의 책임을 나눌 대상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상하게 엄마와 큰누나의 조합을 볼 때면 화가 치밀어 올라

말다툼을 자주 하였다.

나쁜 짓을 한 큰누나와 암묵적으로 동의한 엄마의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나 둘 사이어떤 의견을 조율한 후 나에게 제시할 때는 더욱 그랬다.


어릴 적 야기를 꺼내면 사과하던 큰 누나도

조카 둘을 낳은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다.

어디선가 배워온 듯 '조작된 기억'이라는 말을 늘어놓다.

작은 누나는 지나간 이야기를 그만 하라고 타박을 했다.


나는 아직 기억한다.

더운 여름이었고,

큰누나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옆에 있던 친구들과 그 친구의 동생들에게도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중에 돈은 없었지만

친구의 동생까지도 아이스크림을 사주었기에

얻어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큰누나는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않았다. 돈을 빌려준다는 말도 없었기에 두어 걸음 뒤쳐져 무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돈을 아끼지 않은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말이다.


광복절만 되면 큰누나가 떠오른다.

이미 사과했다는 일본과 큰누나는 내게 크게 다르지 않다.


누나야 사과는 하는 게 아니고 받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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