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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Sep 01. 2019

세부에서 한 달 살기

한정판  외국인 노동자 

직장을 옮기는 과정 중에 비는 시간이 생겨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위해 

일주일 계획으로 막탄으로 갔다.

단골로 이용하는 샾에서 다이브 마스터 과정(PADI의 프로과정)을 한다는 

사람을 만났고, 여러 가지를 감안한 후 나도 그 과정에 함께 하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취소하고,

그렇게 일주일을 계획했던 여행은 한 달이 되어버렸다.


다이브 마스터 과정에 등록함과 동시에 

샾에서의 대우가 달라졌다. 

최상위 대우를 받던 고객에서 가장 아래 계급의 스텝 되어버렸다.

외국인 노동자의 설움이 이런 것인가?

같은 장소, 같은 사람들임이 분명한데 눈치가 보였고 마냥 편하지만은 않게 되었다.

내 안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는데, 

하루의 마무리가 여행자로서의 아쉬움이었다면, 다음날을 준비해야 하는 노동자의 번뇌로 변했다.


막탄에서의 하루 일과를 정리하자면,

아침에 일어나 그날의 스케줄에 맞추어 다이빙 나갈 준비를 했다.

장비 준비와 고객응대는 물론 필리핀에서의 다이빙이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을 준비시켜야 했다.

다이빙 후 다이브 마스터 과정의 수업을 듣고, 중간에 여러 가지 실기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일과 후에는 다음 날 배울 것들에 대해 예습의 일환으로 문제풀이를 해야 했는데,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매일을 여행하는 것처럼 지내는 다이빙 강사들, 여행지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이

그동안 내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의 일상도 한국에서의 일상과 다를 바 없었고,

물에 들어가지 않는 날을 참 좋아하던 다이빙 강사들의 모습이 의아했었는데

이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막탄에 있는 동안 친구가 놀러 왔다.

한국에서 함께 스쿠버 다이빙을 하던 친구가 휴가를 내고 찾아온 것이다.

짧은 일정으로 놀러 온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여행자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친구의 요청에 따라 하루의 휴가를 내고, 세부의 유명한 카와산캐녀닝을 즐기기도 했다.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리면, 그 안에 또 다른 여행이 필요하다는 어떤 여행자의 말이 

절실히 가슴에 와 닿았다.


'##에서 한 달 살기'라는 여행수기를 볼 때면 

한정된 시간과 돈을 가지고 한 곳에서 머무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탄에서의 한 달 이후 

'한 달 살기' 여행 콘셉트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여행 자체의 두근거림이나 새로운 경험이 주는 짜릿함은 덜 하지만,

나름의 단골집과, 나름의 현지인과의 교류,

여행자들이 찾지 않는 뒷골목이나 그들의 시장 같은 것들이 

은은한 향수와 같이 여전히 내 맘속에  자리 잡고 있다.


가끔 막탄을 방문하게 되면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든다.

(4년을 생활한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겨움이다.)

관광지나 유명 음식점은 더 이상 찾지 않는다.

택시 대신 지프니를 타고, 로컬 식당을 들리고

저녁마다 공부했던 커피숖을 들린다.

나를 알아보는 이는 없지만, 그 공간에 켜켜이 쌓인 내 추억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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