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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Sep 12. 2019

노가다

출퇴근 길에 보이는 간판이 있다.

'력에 가치를 하다'

일본어의 잔재로 막일을 뜻하는 단어인 '노가다'라는 말이

참 예쁘게 다가온다.


어릴 적 모친이 운영하시는 식당에서 공사현장의 근로자들이

밥을 먹곤 했는데, 그들의 모습이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어른이 되면 노가다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햇살 냄새나는 구릿빛 피부와, 항상 풍겨오는 달큼한 술 냄새,

지갑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두둑했고,

오전, 오후 맛있는 음식으로 새참을 먹는 그들의 모습은

어린 남자아이에게 진정한 남자의 모습으로 비쳤다.


20대 초반.

군 입대 전에 노가다를 했었다.

전역 후, 간호학과를 진학하고도 쉬는 날과 방학 때는 노가다를 했었다.

IMF 전후로 노가다현장의 풍경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좋아 보였던 것만 기억한 것인지 모르지만

현장에서는 어릴 적 봐오던 낭만 대신,

추위와 더위, 먼지와 욕설만이 무성했다.

세상을 향한 무기라고는 몸뚱이 하나뿐이라,  흘리는 땀만큼의 일당을 받았는데

만 원짜리로 지갑을 가득 채워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입대 전 노가다는 떳떳하지 못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했던 노가다는 스스로 대견했다.

비슷한 나이, 같은 일, 동일한 목적이었음에도

다른 느낌을 받았던 것은 학교를 다니고 있음으로

스스로 나아져 가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냥 틀린 착각은 아니었던지 시간이 지나고 순간을 버티다 보니

대학 졸업장과 간호사 면허증이 생겼다.


간호사로 일하며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이(李) 군아~'에서 '이(李) 선생님' 이 되었으니

아니 좋을 수가 없었고,  간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들이 한순간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적성 맞지 않다는 핑계로 딱 3년만 버티자고 다짐했던 이 직업을 햇수로 12년째 하고 있다.

땀 흘리는 대가로 일당을 받던 '이(李)군' 은

병원에서 소비하는 시간만큼의 돈을 월급으로 받는 '이(李) 선생님'이 되었다.

태어나서 24년까지는 '이(李)군'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이(李) 선생님'이 었고,

지금은 또 다른 '이(李)###'을 꿈꾸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이 지겨운 병원일도 재미있을 것이다. 

새로운 도전이 나에게 스스로 나아져 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할 테니 말이다.

오늘도 병원으로 출근을 한다.

새로운 무엇인가 되고 나

브런치에 늘놓을 자랑거리를 상상보니

당장의 수고로움이 나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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