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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Sep 15. 2019

불편한 'Congratulations!'

초등학교 3학년 때,

(사실 국민학교 3학년이다.)

학급회의 시간에 청소담당을 나누었다.

칠판에 청소와 관련된 각종 업무가 빼곡히 적혔다.

쓸기, 닦기, 바닥, 창틀, 복도 등등 업무의 경중에 따라 인원이 배정되었고,

지원자를 모집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보다는 조금 힘들더라도 혼자 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화분에 물 주기, 칠판 정리 같은 스마트한 직종은 이미 몇몇 여학생이 내정된 느낌이 들어

경쟁이 무의미할 것이라 여겨졌다.


"제일 하기 싫어할 만한 것부터 지원자를 받아 볼까요?"
쓰레기통:1명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다.

어려서부터 비위가 좋아 쓰레기통 자체에 부담도 없었을뿐더러

여럿이서 한 가지 미션을 하다 보면 겪게 되는 마음의 더럽혀짐 보다는

손이나 더러워지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이유로 쓰레기통을 지원한 나였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놀랍도록 달랐다.

감동받아 눈물까지 글썽거릴 정도랄까.

앞으로 불러내어 은일에 지원한 나에 대해 친구들 앞에서 극찬을 해주셨고, 더불어 친구들의 박수 받도록 해주셨다.

대중에게 칭찬받고, 박수받은 첫 번째 기억이었다.

선생님께 착한 아이로 기억된 것에 만족하며

스스로를 속이며 2년을 지냈다.(3.4학년 담임이 동일했다.)

착한 아이인양 포장하고 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5 학년이 되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치과검진을 받았는데,

검진을 해주었던 치과의사가 내 이빨이 튼튼하다고

칭찬을 하셨다.

며칠 후 양호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건치아동 선발대회 참가했다.

참가상에 그쳤지만 상장과 선물을 받아왔고, 부산시 치과협회에서 인정하는 건치아동이 되었다.

월요일 조례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았다.

상품이 전달될 때 전교생이 지르는 부러움의 탄성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양치질을 참 싫어하던 아이였다. 자기 전에 양치는 특히나 싫어했다.

상장에 적혀있는 치아관리를 잘했다는 칭찬은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두 번의 사건.

첫 번째는 칭찬이 마냥 좋았고

두 번째는 어떤 불편함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노력 없이 주어지는 칭찬이나 축하는 께름칙했다.

첫 번째는 처음이라 몰랐고,

두 번째는 스스로 부끄러운 감정의 실체를 느꼈다.


생일 축하받는 것을 특히나 싫어한다.

출산 시 산모만큼 태아가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 노력으로 몇십 년이나 반복된 축하를 받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다.

부족한 노력에 비해 좋은 결과가 생겨 보상을 받게 되면 남의 것을 빼앗은 것 마냥 불편하고 부끄럽다.

반대로 엄청난 노력을 들였음에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경우에는 부족한 자신을 탓하는 것

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가?

사는데 불편함은 없지만, 누군가의 축하를 받는 상황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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