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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Sep 02. 2019

중독병동 간호사

중독성 사고를 아시나요?

정신간호사 학회에 참석한 날이었다.

도박중독에 관한 주제였는데, 강사가 중독 현장에 있는 간호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정신간호사회 교육이고, 주제가 도박중독이라 과반 이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포함하여 세명이 손을 들었다.

강사는 다른 참석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부탁했다.

박수를 받으며 생각했다.

중독 현장에 있다는 것이 박수를 받을 만한 일가?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중독병동은 간호사들이 피하는 병동이다.

다른 병동에 있는 간호사들은 중독병동으로 로테이션(근무지 변경)될 바에

그만두겠다 라고 말한다.(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멋모르는 신규 간호사가 중독병동으로 충원되는

경우가 많고, 어린 마음에 상처 받고 병원을 떠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중독성 사고'라는 말이 있다.

중독자들이 가지는 특이한 사고방식을 말한다.

Abraham J, twerski의 중독성 사고 (하나 의학사)라는 책에서

역자는 서문에 이렇게 말했다.

AA 모임에서 회복 중의 중독자들에게 ‘중독성 사고’를 소개한 일이 있었다.
나의 강연이 끝난 후 질문받는 시간에 한 참여자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았다.
중독자들은 진실을 부정하고, 남을 조작하고, 거짓말하고, 투사로 남을 비판하고,
망상에 사로잡힌 존재로 매도했다는 것이다.  그 질문을 받고 중독성 사고가
중독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생기는 왜곡이고 고의적이 아닌 무의식의 자기 방어와 정당화를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인지부조화라는 사실을 간곡히 설명하고 넘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가지 큰 교훈을 얻었다.
중독성 사고는 아직 그 사고가 남아 있는 사람에게 이론의 형태로 소개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위의 서문과 같이 나는 중독성 사고에 대한 글을 쓰기가 참으로 조심스럽다.

하지만 중독병동에서 간호사의 고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중독성 사고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고,

중독 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사고 현상이 처음 인정된 곳이 AA(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 에서라는 사실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중독성 사고는 사고의 왜곡현상, 지적능력의 저하, 인과관계의 혼동, 시간 개념의 변화, 흑백논리 등을

포함한다. 중독성 사고의 하나하나에 대한 예를 들고 설명하기에는

지면과 필력이 부족한 관계로 중독성 사고를 구성하는 요소인 부정, 합리화, 투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부정, 합리화, 투사는 심리적인 방어기전이다. 무의식적인 기전이기에 왜곡되었을지언정

중독자에게만큼은 진실이다.


부정(denial)

중독성 사고에서 말하는 부정은 '거짓말'이 아니다.

중독자에게 스스로 중독자임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12단계 치료(알코올 중독에서 회복된 초기 멤버가 만든 규칙)에서 1단계가

알코올 앞에서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보통은 쉽게 1단계를 넘어서지만,

입원 치료 중인 중독자 중 실제로 중독자임을 받아들인 케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중독자들은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고,

도덕적 타락이나 인격적인 약점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는 중독자임을 인정하고 회복의 길로 들어서게 되면,

더 이상 물질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쉬운 예로 오랫동안 입원생활을 같이 한 동료환자가 술로 인해 건강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보면서도

본인은 그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더 심각한 것은 술로 인해 몸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도 술과 건강문제를 연결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중독자들이 여러 병원을 다니고, 다양한 약물과

건강기능식품을 잘 챙겨 먹는다. 그러면서 술도 열심히 먹는다.


합리화(Rationalization)

많은 중독자들이 술을 먹기 위한 '그럴듯한'이유를 가지고 있다. 합리화는 앞서 말한 인과관계의 혼동을 포함하고 있다. 자신의 술 때문에 생긴 가정의 불화를 술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 만들어 버린다.

신체적인 통증이나 수면문제도 합리화로 사용된다.  그런 합리화로 현재의 중독상태를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게 되고, 앞의 부정을 극복하더라도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하게 된다.

외출을 하게 되면 술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환자가 있고, 그 환자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만,

이런저런 사유를 들어가며 외출을 나가고, 여지없이 술을 먹고 귀원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투사(Projection)

투사란 실제로 우리가 잘못한 일을 제삼자에게 비난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남 탓'+'성질부리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투사는 자신의 부정을 강화시키고, 중독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합리화에 일조한다.

입원 중인 환자가 반복된 음주로 주치의와 한 달간 외출/외박을 가지 않기로 했다.

외출을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음으로 환자는 언제든지 외출할 수 있지만,

환자는 주치의와의 관계를 걱정한 나머지 외출을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답답한 마음을 간호사들에게 투사를 한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투사는 관리하기가 쉽다. 하지만 대부분 환자들은 간호사에게 투사를 할 경우

지나치며 인사하지 않은 것, 바쁜 일 처리 중에 질문하고는 대답 시 눈을 마주치지 않은 것,

과 같은 지나치게 작은 일로 시비를 건다(간호사 입장에서는 시비 거는 것으로 느껴진다.)


부정, 합리화, 투사는 하나씩 표현되는 방어기전이 아니다.

복합적이고, 서로를 강화하며 치료자와 주변인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더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갈망(Craving)이다.

중독성 화학 물질(술)에 대한 욕구가 너무도 크기 때문에, 이 욕구가 물질의 사용을 허용하거나, 제지하는

그 사람의 사고 과정을 좌우하게 된다.

입원 초기에 갈망으로 인해 퇴원을 요구하는 환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바로 퇴원을 할 수 없는 입원 유형의 환자들은 음주욕구를 조절할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자의로 입원한 환자의 퇴원을 막을 방법은 우리에게 없다.

이들의 갈망 또한 부정과, 합리화, 투사를 이용해서 우리에게 표현한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은 퇴원과 동시에 술을 마시게 되고, 다음 입원 시에는 다양한

제한이 따르는 다른 유형(동의입원. 보호 입원)으로 입원을 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런 중독성 사고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인 방어기전이기에 이것을 중독자에 직면시킨다면 여지없이 저항과 투사를

경험하게 된다. 12단계 치료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상담을 통해

중독자들은 자신의 왜곡된 사고를 깨닫게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교육에서 들었던 내용을 투사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로 만들기도 한다.


나는 중독 파트에서 일하는 치료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이

이 중독성 사고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독성 사고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중독자들의 사고 특징이 파악되면 환자를

볼 때 감정적인 부담도 덜어 주고 좀 더 편안하게 환자를 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부족한 글이지만, 후배 치료자들에게 조금이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PS

조작하기 : 알코올, 약물을 사용으로 이차적으로 생기는 특징 중 하나.

알코올, 약물 사용을 그럴듯하게 설명하거나, 문제를 은폐, 사용 약물을 늘리기 위한 상황을 조성

하기 위한 특징으로 이 조작은 뇌 속에 각인되어 하나의 성격적 특성으로 남게 된다.

ex) 안정제를 추가적으로 먹기 위해 타 환자와 시비 상황을 유발함.

ex) 칭찬과 험담을 동시에 함으로써 친밀감을 쌓으며, 타인을 비난할 토대를 만듦.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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