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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Nov 01. 2019

취두부

첫 경험! 도전!

나는 취두부를 먹을 줄 안다.



취두부와의 첫 만남


중국. 윈난 성. 리장 고성.


저녁식사를 위해 외출을 하려는 나를

호텔 사장님이 불러 세웠다.

식사에 초대하는 듯했다.

중국인들 틈에 들어가 앉을 용기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 사이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완곡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거절 의사를 표현했으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장님의 반복되는 초대를

뿌리치기힘들었다.


결국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커다란 유리잔에 고량주를 가득 부어주었다.


'원샷을 해야 하나?'

고량주를 즐겨 마시지도 않았고, 중국인과 술자리는 처음이다 보니 고민을 하게 되었다.

어른이 따라준 술이고, 초대에 감사를 표하는 뜻에서

원샷을 했다.

(맥주 glass 보다 조금 작은 듯한 유리잔)


다들 놀라워했다.

지금에서야 향을 즐기며 홀짝거려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땐 몰랐다.


다시 한번 내 잔에 고량주가 가득 채워졌다.

놀라움 반, 기대 반을 담고 있는 그들의 눈빛을 보았다.

이 잔을 거부하면 한국인의 자존심에 금이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의 원샷.

(주변에 아는 중국인 중에 고량주 원샷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순간적으로 취기가 올라왔고, 그렇게 호텔 사장은 나의 '따거'가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참 많은 대화를 했고 즐거운 술자리였던 것으로만 기억된다.

( 외국인들과의 술자리는 참 재미있다. 취하게 되면 언어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새 '위아 더 월드'이고 '베프'이다.

다음 날 술이 깬 후의 뻘쭘함을 감당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그렇게 취한 상태로 준비된 음식을 다 먹을 때쯤

냉동실에서 밀가루 빵을 꺼내 불판에 굽기 시작했다.

구운 밀가루 빵에 무엇인가를 듬뿍 발라주었는데

그것이  취두부였다.

취기가 오른 상태라 냄새가 크게 역하지 않았고

이미 대한민국 상남자 코스프레에 푹 빠져 있었기에

거부할 수 없었다.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우리네 잘 삭힌 젓갈과 같은 풍미가 났다.

'이거 괜찮은데'


또 한 번 놀라움 눈빛들이 오간다.

8명이 앉아있던 테이블에 취두부를 먹는 사람은 나와

따거(호텔 사장) 뿐이었다.

노랑머리 외국인이 삭힌 홍어를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본다면,

아마 나도 저들과 같은 표정을 짓겠지?


과식과 과음을 했음에도 다음날 아침에 속이 참 편했다.

취두부가 내 속을 보호해 준 것 같은 기분은

그냥 느낌이려나?

(주변에 아는 중국인들 중에 취두부 먹는 사람

없어요.)



나는 취두부를 먹을 줄 안다. 사실 매우 좋아한다.

역한 냄새로 취두부를 파는 가게 앞을 지날 때면 코를 틀어막았던 적도 있었고,

이런 음식을 먹는 중국인들이 이해가 되지 않은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낯선 음식에 대한 도전이란 쉽지 않다.

역한 냄새가 나는 음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취기 때문일 수도,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취두부를 먹게 된 것은 나로 하여금 중국음식에  대한 장벽을 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맛에 대한,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일단 한번 드셔 봐요.

먹지도 않고 판단하지 말고.

일단 한번 해봐요.

하지도 않고 판단하지 말고.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가치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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