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 / Day 12 / 359.3km
겨울철 까미노는 여름철 성수기 때의 까미노와 다르게 선택권이 많지 않다.
닫혀있는 알베르게가 많다 보니, 모든 사람이 정해진 코스가 있는 것 마냥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암암리에 정해진 코스에 의하면 다음에 머물 마을로 Hontanas(온타나스)가 적절해 보였다. 31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하루치 걷는 양으로 적당하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지난밤 부르고스에서 함께 머물렀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부 온타나스로 이동했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은 달랐다. 우리는 31km의 온타나스를 넘어 39.9km 떨어져 있는 카스트로헤리스로 가기로 했다. 나는 추운 알베르게가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착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구글 맵스가 알려주는 리뷰에 의하면 온타나스의 알베르게들은 전부 춥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39.9km라는 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카스트로헤리스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 39.9km짜리 마음가짐을 하고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우리의 정보왕 형석이의 솔깃한 제안이 있었다. 차라리 12.8km 정도 떨어져 있는 Rabe de las Calzadas(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에서 머무는 것은 어떻냐고 제안해 온 것이다. 짧은 거리를 걷는 것이 뒤따르는 일정에 혹시나 무리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 들긴 했지만, 큰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짧게 걸은 만큼 나중에 더 걸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짧은 거리를 걸어 보는 것 또한 재미난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한 번도 그렇게 걸어본 적은 없으니까. 우리는 그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12.8km의 거리는 평소에 걷던 속도로 걸으면 두 시간정 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4시간이 걸렸다. 처음 만나는 짧은 거리에, 마음가짐이 급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이렇게나 느린 속도로 걸어 본 것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산책하듯 걸어 본 까미노는 또 느낌이 새롭다. 여태껏 얼마나 전쟁 같은 발걸음으로 일정을 소화했는지 오늘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느리게 움직일수록 눈에 보이는 게 많다고 했는데, 나는 왜 이리 빨리 걸었던 것일까.
까미노의 중간지점을 바로 앞에 두고 오랜만에 여유를 찾았다.
시간 여유가 많아서, 부르고스 시내를 한참 동안이나 빙빙 돌며 구경하다가 목적지로 출발하기도 했다. 우리가 출발하는 시간은 부르고스의 출근, 등교시간이었었다. 우리와 같은 배낭을 매진 않았지만, 각자만의 소지품이 든 가방들을 들고, 발바삐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일이 재밌었다. 남들은 다 출근하고 등교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그들과 다른 큰 배낭을 짊어지고, 나무 막대기로 땅바닥을 짚어가며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이 대비되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이 느낌이 난 늘 참 재밌다.
정말 내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남들의 일상 속에 잠시 놀러 온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제 3자가 되어 그들을 관찰하고 있는 관찰자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는 동시에 나는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그들에게 투영한다. 그들의 모습에 나를 비춰보며, 제 3자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저들처럼 왜 저리 바삐 살았을까, 나는 왜 그리도 많은 스트레스를 품고 살았을까. 그 당시의 나는 왜 땅만 보고 걸었을까.
누군가의 손목시계는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탁상시계는 느리게 흐른다. 글쎄, 출근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참 바빠 보였다. 1분 1초가 급해 보였다. 잘은 모르지만 그들의 삶에 여유라곤 없어 보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관찰자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한데, 나의 시간도 하루 24시간, 그들의 시간도 하루 24시간으로 똑같은데, 느끼는 바가 왜 그렇게 달랐나 싶다.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향유하는 것은 본인의 몫인가 보다. 어떻게 향유하는지에 따라 빠른 손목시계를 차기도 하고, 느린 탁상시계를 놓기도 하나보다. 누군가는 1분 1초가 아깝다고 스스로를 매일 채찍질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른 아침 커피를 내려마시며 여유를 갖고 산책하듯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봐야겠다. 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을 좀 더 여유롭게 향유할 수 있게, 여유가 있음을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다.
8시에 출발해 12시가 다 되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정말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 구경할 것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슈퍼마켓도 없어서, 저녁식사로 알베르게에서 제공되는 순례자 메뉴를 먹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아이패드로 드라마도 보고 듣고 싶었던 목소리를 가진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영상 통화도 했다. 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벽난로 앞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며 오늘따라 시간을 잘 향유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니기가 사실 부끄럽다. 하지만 매일매일 이렇게 남들이 전부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할 말은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걷다가 어떤 글감이 생각나면 핸드폰을 열어 메모를 해두는 편인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산책하듯 까미노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했음에도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 어떠한 메모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중 한 가지 기억나는 건 하나 있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점점 구질구질하게 붙잡고 있었던 것들이 부질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잘 되지 않았던 인간관계,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인생에 대한 고민,
자꾸만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며 나를 괴롭혔던 고민들이 하나둘씩 부질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니까, 이 느낌을 얼마나 이어 갈 수 있을진 모르겠다. 얼마나 더 많은 고민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괜한 설레발을 치는 바람에 더 이상 이런 ‘비워내기'가 주는 느낌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까미노를 걸으며 비워 낸다는 게 이런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답을 찾고 싶다는 욕심에 붙잡고 있던 것들을 이제는 덜어내고 비워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야 손을 꽉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붙잡아둔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게 됐다. 문득 내가 붙잡지 않았음에도 내 곁에 있어준 모든 것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감사한 생각이 든다. 그래, 내가 붙잡지 않아도, 내 곁에 있을 것들은 손바닥에 붙은 모래알처럼 아주 견고히 잘 남아있다. 욕심내어 붙잡으려 했던 것들은 잘 놓아주고, 붙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붙잡혀 있는 것들은 여전히 잘 남아 있을 수 있게, 손에 힘을 좀 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