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이제는 마무리

스페인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 / Day 14 / 420km

by 한성호
카스트로헤리스 - 프로미스타.png 오늘의 루트


"딱 2주 차."


2주 동안에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글쎄, 성장을 논하기에, 성장을 논할 만큼 그만큼 시간이 흘렀나? 그만큼 많은 생각을 했나? 잘은 모르겠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강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걷는 동안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하며 깨닫는 것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으니 말이다.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분명 체력도 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언제 이렇게나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하루에 20km 이상씩 걷는 것이 분명 나를 더욱이 건강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물론 발은 빼야 한다. 현재 발의 상태는 건강과 거리가 멀다. 발이 제일 고생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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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했던 오늘의 길

오늘은 목적지 마을인 Fromista(프로미스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안개가 껴있었다. 그렇게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으니 차안대를 차고 달리는 경주마의 느낌이 무엇인지 얼추 알 것만 같다. 정말 양 옆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전방 20m 정도만 바라보며 계속 걷는데, 괜히 기분도 다운되고, 즐거울게 별로 없었다.

자갈길을 걸었던 탓일까, 아니면 즐거울 것이 없어 다운된 기분을 나의 발이 공감했던 탓일까, 프로미스타에 도착하기 6km 전 지점부터 발이 너무 아팠다. 이 아픔이 물집 때문이라면 지난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걸으면서 아픔에 적응하고, 그렇게 불편함 없이 걸을 수 있었을 텐데, 물집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늘은 발바닥에 피멍이 든 채로 걷는 느낌이었다. 피부가 아닌 그 속이 아팠다고 해야 할까, 마치 뼈에도 물집이 잡힐 수 있다면, 뼈에 물집이 잡힌 것 같은 아픔이었다. 덕분에 6km 내내 절뚝이며 걷느라 정말 힘들었다.

참 희한하다. 보통은 한쪽 발이 아프면 다른 쪽 발을 대신 써가면서 아픔을 나눠야 맞는 것 같은데, 나는 다른 한쪽마저 아파 버릴까 봐 걱정을 했기 때문이다. 절뚝거리면서 걷다 보면 다른 한쪽에도 무리가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억지로 아픔을 참고 억지로 계속 똑바로 걸으려고 노력하며 6km를 걸었던 것 같다. 글쎄, 한쪽만을 잃는 게 잘하는 짓일까, 아니면 양쪽 다 조금씩 아픈 게 잘하는 짓일까. 발은 균형을 맞춰 걷는 존재니까 아픔을 나눠야 맞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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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이 많은 나의 발과 철 없는 나


나흘 후면 또다시 ‘레온'이라는 대도시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곳에 도착한다고 해서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긴 한다. 근데 문제는 나흘이나 걸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나흘 동안 하루에 30km 이상씩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발이 잘 버텨줘야 할 텐데, 조금 천천히 가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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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헤리스를 넘으며 만난 고개에 있던 쉼터, 그리고 그곳의 낙서 '나는 춘천사람이 아닌데도, 막국수가 먹고 싶어요. 진심으로요'


오늘은 까미노를 걷기 시작한 지 딱 2주 차가 되는 날이 되어 까미노 중반에 들어섰다. 그리고 나의 세계 여행은 중반을 넘어 이제는 시작보다 끝이 훨씬 가깝다. 그렇게 문득 마무리에 대한 생각이 든다. 까미노는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 것이며, 나아가 나의 세계여행은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까?

나는 마무리를 꽤나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아름다운 끝맺음을 해야 정말 끝난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아니, 꼭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단지 정말 끝나는 것 같은, 어떤 획기적인 이벤트가 있어야만 끝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만일 무슨 일이 지지부진하게 끝난다면, 그것은 끝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에도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끝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임팩트 있는 시작과, 임팩트 있는 끝이 있어야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시간들이 내게 소중하게 느껴진다.


글쎄, 이렇게 생각하는 나에게 어떤 마무리가 적절할까?


IMG_9037.JPG 웰컴 투 프로미스타!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를 하루 이틀 남겼을 때 100km를 철야로 걸으면 아름다운 마무리일까?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인천공항부터 집까지 걸어가면 세계여행의 끝맺음으로 적절할까?


어쨌든, 정말 의미 그대로의 ‘Good bye’ ‘좋은 안녕'을 위해 이제 조금씩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