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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an 26. 2020

칠링 인 치앙마이_Chiang Mai, Thailand

Chilling


다른 영어권 여행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배운 단어다. ‘Chilling’. 우리나라말로 직역하면 ‘식히는 중’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하지만 단순히 ‘식힌다’는 의미 외에도 여러 의미가 담겨 있음이 느껴진다. ‘휴식’, ‘분위기를 느끼기, ‘아무것도 안 하기’ 뭐 기타 등등 이런 느낌의 단어다. 치앙마이의 키워드는 ‘Chilling’이다.


대도시가 그리웠고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시간이 그리웠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대강 점심 같은 아침을 먹고, 길거리를 거닐다 맘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고, 그냥 일기 쓰고, 그냥 책 읽고. 그냥 그런 날들이 그리웠다.


치앙마이에서 이런 그리움을 채웠다. 여태까지 머물렀던 곳이 마을이라면 여긴 정말 도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맥도날드도 무려 24시간 쉬지 않고 영업하고, 숙소 앞을 조금만 걸어 나가면 세븐일레븐도 있어서 편하다. 카페가 엄청 많아서 매일매일 다른 느낌의 카페를 찾아다닌다. 모험이 가득하진 않아서 여행이라고 말하기 민망하지만 여행 중 칠링의 시간이다.



세계 요가인의 날을 핑계 삼아 아침 요가를 다녀왔다. 승호 씨의 등쌀에 반강제로 함께 했지만 막상 다녀오니 좋은 시간이었다. 난 요가와는 거리가 멀다. 요가가 몸에 좋다는 건 안다. 그리고 연극을 공부하던 시절 단순히 유연해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배워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늘 등록을 망설였다. 막상 수업을 들으며 동작을 못 따라 하는 내가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렇게 집에 숨어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몇 동작들을 따라 해 본 게 내 요가의 전부다.


그런데 오늘 다른 사람들과 수업을 들으며 나보다 동작을 못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동작을 못하면 부끄러우니까, 팔다리를 들고 있는 내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 쪽팔리니까 자꾸 숨기만 하고 결국 ‘안 할래’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민망해진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하고 싶으면 하고 싶다고 자신 있게 수업에 참가한 그들이 멋있다. 나 좋자고 하는 운동인데 남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고 포기해 버린 거다. 스스로가 실망스럽다. 남들 만큼의 덤벨을 들지 못해서 헬스를 고민하다 포기하고, 날 비웃을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요가 수업을 포기한 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그냥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건데 말이다.



낮시간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습관을 들이려 연습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유로움이 직접적으로 느껴져서 좋다. 그리고 솔직히 남들이 바라보기에도 내가 여유로워 보일 거라 생각한다. 남들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내게 딱 맞는 일이다. 아무튼 나는 수필, 에세이류를 좋아한다. 글이 짧아 읽기 쉬워서 그런가 싶지만, 작가의 생각을 읽으며, 작가뿐만 아니라 사람의 다양성을 느끼고, 사람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다. 그를 통해 나를 바라보게 되고, 나에 대해 조금 알게 됨을 느낀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라던가 ‘나랑은 생각이 이렇게 다르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인가?’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보면 여행 중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여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던데, 많은 사람을 만나면 나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밤엔 영화관에 간다. 내가 한국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다. 제일 좋아하는 칠링의 방법 중 하나다. ‘혼자 심야영화보기’ 단순히 내가 궁금해하는 영화가 개봉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시공간의 느낌의 좋다. 사람이 몇 없는 한적한 영화관,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 문 닫은 쇼핑몰, 막차가 끊겨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 모든 게 다 좋다. 그게 도대체 뭐가 좋은데?라고 묻는다면 답을 할 순 없겠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만의 그런 느낌이 있다. 정말 이게 칠링이구나. 치앙마이에서만 영화관에 두 번이나 갔다. <알라딘>과 <토이스토리 4> 내가 좋아하는 행위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 게다가 여행 중이라는 특별함까지, 아마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 같다.



본인에게 맞는 장소가 존재한다. 보통 도시 혹은 자연으로 나뉜다. 답을 내는 게 웃길 만큼 모든 사람이 때에 따라 다른 것이겠지만, 지금의 난 도시에서 보내는 시간이 칠링 하기 좋다. 아침에 일어나 사람들과 함께했던 요가부터 카페에서의 독서, 심야영화까지 자연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른 느낌의 칠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달리던 길에서 잠시 벗어나는 게 칠링이 아닌가 싶다. 여태껏 많은 시간을 여행하진 않았지만 맥도날드도 없었고, 세븐일레븐도 없어 불편했다. 요가는 생각지도 못 했으며 심야영화를 볼 시간이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벗어나니 이제야 좀 칠링이 된다.


나는 다람쥐가 쳇바퀴 돌듯 규칙적인 삶을 산 사람이 아니다. 매일 같이 들어야 하는 수업도 없었고 직장도 없었다. 내가 뭘 얼마나 달려왔다고 이렇게 말하는 게 조금은 민망하지만, 아무튼 규칙에서 벗어나니 칠링 하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이 여행도 자체도 칠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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