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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Feb 07. 2020

칠링 인 빠이_Pai, Thailand

팔찌 팔이 소년

긴 여행을 준비하며 예산을 최소화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돈이 떨어질 수도 있을 테니 그런 날을 미리 대비할게 필요했다. 제일 처음 생각했던 건 팔찌를 만들어서 파는 거다. 팔찌를 만들 준비물의 부피도 크지 않고 가벼우며 재료비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만들 줄 아는 종류가 다양한 것도 아니다. 그저 머리 땋듯이 3줄을 꼬는 게 전부지만, 할 줄 아는 게 그리고 가능성 있어 보이는 게 이뿐이었다. 당연히 안 팔릴 거라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모르게 팔 수도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겨서,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다낭에 있을 때 한국으로부터 재료를 공수받았다.


여태까지는 팔 자신도 없고 눈치 보며 들고만 다니다가 오늘 드디어 거리로 나서 판매를 개시했다. 빠이의 여행자 거리에는 다른 여행객들도 자리를 깔고 앉아서 무언가를 팔고 있다. 그 덕분에 용기가 났던 것도 있지만, 함께하는 승호 씨가 없었으면 못 했을 것 같다. 더 용기내기가 어려웠을 거다. 승호 씨는 자기가 여태 찍어 놓은 사진을 인화해 팔고 나는 그 옆에서 팔찌를 만들어 팔았다.


우리가 만든 빠이 여행자거리의 간이 노점


당연히 많이 팔리진 않았다. 하루에 보통 3개를 팔아서 60바트를 벌었다.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는 날은 별로 없지만 매일매일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낮동안엔 빠이를 좀 둘러보고, 저녁때쯤에는 야시장에 나가서 팔찌를 판다. 그게 빠이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이다. 덕분에 빠이에서의 숙박비는 이 걸로 충당할 수 있었다.


많이 팔리건 안 팔리건 간에, 재미난 추억이 하나 생긴 걸로 만족한다. 정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추억이다. 내 평생 언제 이런 걸 다시 해 볼 수 있을까?




다양하거나 많진 않지만 그렇게 빠이에서의 일정도 모두 끝났다. 유독 시간이 빨리 간 것처럼 느껴진다.


빠이 밤부브릿지 / 빠이 화이트템플
빠이 캐년 / 재즈페스티벌

빠이는 참 칠링 하기 좋았다. 괜히 세계 여행자들이 이 곳에 몰리는 게 아니더라. 이 곳에 있는 모두가 여유를 만끽하는 게 느껴졌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슬리퍼를 끌고 나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저녁엔 다른 여행자들과 저녁과 맥주 한잔을 곁들이며 대화의 꽃을 피운다. 모두가 똑같다. 이 곳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나 또한 대부분의 시간은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고, 저녁엔 팔찌를 팔고, 맥주 한 캔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게다가 내가 머물렀던 기간에 운 좋게 재즈 페스티벌도 있어서 며칠 동안은 하루 종일 재즈만 들었던 날도 있었다.




긴 시간 동안 함께 하던 승호 씨와의 여행이 빠이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승호 씨랑 함께니까 할 수 있던 것들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꽤나 많다. 정글 트레킹, 히치하이킹, 사진/팔찌 노점 장사도 전부 함께니까 할 수 있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세계여행 선배이다 보니 팁들도 많이 얻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세계여행을 정말 진정으로 즐기는 승호 씨를 통해 스스로도 많이 돌아보게 된 것 같다. 꽤 보고 싶을 것 같다.


코쿤캅 승호


솔직히 여행하며 제일 꺼려하던 게 ‘한국인 동행’이 생기는 거였다. 다낭에 지내면서 한국인만 만나서는 발전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 한국인의 못 난 모습을 많이 봐서 ‘한국인은 우선 피하자.’라는 마음이 생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같은 한국인이다 보니 내가 그 사람들의 눈치도 너무 많이 보게 되고, 서로 상처를 줄까 봐, 서로 상처를 받을까 봐 조심하는 게 불편했다. 하지만 승호 씨 덕분에 마음의 벽이 조금은 무너졌다.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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