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찌 팔이 소년
긴 여행을 준비하며 예산을 최소화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돈이 떨어질 수도 있을 테니 그런 날을 미리 대비할게 필요했다. 제일 처음 생각했던 건 팔찌를 만들어서 파는 거다. 팔찌를 만들 준비물의 부피도 크지 않고 가벼우며 재료비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만들 줄 아는 종류가 다양한 것도 아니다. 그저 머리 땋듯이 3줄을 꼬는 게 전부지만, 할 줄 아는 게 그리고 가능성 있어 보이는 게 이뿐이었다. 당연히 안 팔릴 거라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모르게 팔 수도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겨서,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다낭에 있을 때 한국으로부터 재료를 공수받았다.
여태까지는 팔 자신도 없고 눈치 보며 들고만 다니다가 오늘 드디어 거리로 나서 판매를 개시했다. 빠이의 여행자 거리에는 다른 여행객들도 자리를 깔고 앉아서 무언가를 팔고 있다. 그 덕분에 용기가 났던 것도 있지만, 함께하는 승호 씨가 없었으면 못 했을 것 같다. 더 용기내기가 어려웠을 거다. 승호 씨는 자기가 여태 찍어 놓은 사진을 인화해 팔고 나는 그 옆에서 팔찌를 만들어 팔았다.
당연히 많이 팔리진 않았다. 하루에 보통 3개를 팔아서 60바트를 벌었다.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는 날은 별로 없지만 매일매일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낮동안엔 빠이를 좀 둘러보고, 저녁때쯤에는 야시장에 나가서 팔찌를 판다. 그게 빠이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이다. 덕분에 빠이에서의 숙박비는 이 걸로 충당할 수 있었다.
많이 팔리건 안 팔리건 간에, 재미난 추억이 하나 생긴 걸로 만족한다. 정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추억이다. 내 평생 언제 이런 걸 다시 해 볼 수 있을까?
다양하거나 많진 않지만 그렇게 빠이에서의 일정도 모두 끝났다. 유독 시간이 빨리 간 것처럼 느껴진다.
빠이는 참 칠링 하기 좋았다. 괜히 세계 여행자들이 이 곳에 몰리는 게 아니더라. 이 곳에 있는 모두가 여유를 만끽하는 게 느껴졌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슬리퍼를 끌고 나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저녁엔 다른 여행자들과 저녁과 맥주 한잔을 곁들이며 대화의 꽃을 피운다. 모두가 똑같다. 이 곳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나 또한 대부분의 시간은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고, 저녁엔 팔찌를 팔고, 맥주 한 캔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게다가 내가 머물렀던 기간에 운 좋게 재즈 페스티벌도 있어서 며칠 동안은 하루 종일 재즈만 들었던 날도 있었다.
긴 시간 동안 함께 하던 승호 씨와의 여행이 빠이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승호 씨랑 함께니까 할 수 있던 것들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꽤나 많다. 정글 트레킹, 히치하이킹, 사진/팔찌 노점 장사도 전부 함께니까 할 수 있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세계여행 선배이다 보니 팁들도 많이 얻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세계여행을 정말 진정으로 즐기는 승호 씨를 통해 스스로도 많이 돌아보게 된 것 같다. 꽤 보고 싶을 것 같다.
솔직히 여행하며 제일 꺼려하던 게 ‘한국인 동행’이 생기는 거였다. 다낭에 지내면서 한국인만 만나서는 발전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 한국인의 못 난 모습을 많이 봐서 ‘한국인은 우선 피하자.’라는 마음이 생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같은 한국인이다 보니 내가 그 사람들의 눈치도 너무 많이 보게 되고, 서로 상처를 줄까 봐, 서로 상처를 받을까 봐 조심하는 게 불편했다. 하지만 승호 씨 덕분에 마음의 벽이 조금은 무너졌다.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