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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Feb 16. 2020

이유가 뭐야?_To Bangkok, Thailand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합리적 의심

치앙마이 기차역 / 방콕행 야간열차


빠이를 떠나, 치앙마이에서 기차를 타고 근 13시간 정도를 달려 방콕으로 이동한다. 잠시 다낭으로 돌아가 휴식을 즐기기 위함이다. 아무래도 13시간이라는 장거리 열차니 눈을 붙여야 했다.


기차 객실 내부


사람도 많이 없어서 조용하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잔뜩 담은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창밖을 한참 바라본다. 계속 새로운 풍경이 지나가는 것 또한 기분이 묘하다. 어디는 건물이 높고, 어디는 논 밭이며, 깜깜한 터널도 지난다. 지나가는 풍경들과 사람들은 그 자리 그대로에 남겨져있는데 나만 떠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참 좋다. 나는 이상하게 장거리 이동, 특히나 밤에 이동하는 게 참 좋다. 왜 좋은지 이유를 설명하기는 참 어렵다. 그냥 야간열차, 야간 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괜히 생각이 정리되고, 또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기도 하고,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의 답을 찾기도 한다.




카오산로드의 명물


카오산로드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숙소가 근처라 숙소에 짐을 풀고 카오산로드로 향했는데, 그땐 아쉽게도 낮시간이었다. 낮시간엔 ‘이게 말로만 듣던 카오산로드라고?’였지만 해가 지고 나니 ‘이게 카오산로드구나....’가 절로 나올 만큼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이 카오산로드를 ‘무국적 공간’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정말로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모두가 이방인이라서 이방인인 내가 특별하지 않은 곳이다.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괜히 기분이 묘하다.


카오산로드의 밤 풍경


2층 테라스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사람들을 구경한다. 해외에서 유행하고, 유명한 팝들을 조금 뽕짝스럽게 바꾼 라이브 연주가 흘러나온다. 듣고 있으니 참 기분이 좋아진다. 라이브 연주가 왜 좋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좋은데 말이다. 그냥 라이브 연주에는 묘한 끌림이 있을 뿐이다.


방콕의 어느 코인 빨래방


다낭으로 떠나기 전에 모처럼 빨래방에 다녀왔다. 손빨래를 하며 괜히 잘 안 되는 것 같은 찝찝함을 매일 감수하고 있었는데, 묵은 빨래를 한 번에 다 해치우니 속 시원하다.

이상한 얘기지만 나중에 빨래방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도 들 만큼 나는 빨래방도 좋아한다. 이 또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좋고,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는 소리가 좋다. 지저분한 내 옷들이 거품 속에서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건조기에서 갓 나온 빨래의 따스함을 느끼는 일, 옷을 다시 개며 풍겨오는 세제의 향긋함을 맡는 일 전부 다 좋다. 이유? 잘 모르겠다.

방콕시내 사원에서 기도를 드리는 한 여인


스스로를 자꾸 의심하는 버릇이 있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일에 있어서 그렇다. ‘왜 내가 이걸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내가 정말 이걸 좋아하긴 하나?’하며 계속 의심을 품는다. 얼만큼이나 좋아하는지,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지 확신을 갖지 못한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의 오르페우스가 지옥을 미쳐 빠져나오기 전에 에우리디케를 돌아봐 에우리디케를 잃은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의심을 품다가 결국 다 놓쳐버리고 만다. 가끔은 아무런 생각 없이 ‘나 이게 좋아’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글쎄, 좋아하는 것에 이유를 붙여 확신을 찾는다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에 확신이 더 해지면 더 큰 시너지를 만들어 낼 테니까. 하지만 좋아하는 데에 자꾸 이유를 붙일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걸로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 그러니 내가 좋아? 왜? 같은 질문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유 없이 좋은걸. 이유가 없다 해서 널 싫어하는 게 아닌 걸.



다낭으로 잠시 돌아간다. 함께 일했던 윰형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가까이 제2의 고향이 있으니 재충전을 위해 간다. 공식적인 베트남 여행은 추후에 계획되어 있긴 하지만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다녀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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