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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Mar 20. 2020

제2의 고향_Vietnam

일상이 되어버린 여행을 떠나 여행을 하다.

두 번째 고향, 베트남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웠던 친구들도 만나고, 먹고 싶었던 음식들도 먹으며 일상이 되어버린 여행을 벗어나 또 다른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내가 살던 다낭뿐 아니라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Đắk Lắk(닥락)을 그리고 내려간 김에 가보고 싶었던 Đà Lạt(달랏)까지 다녀왔다.


슬리핑 버스


대부분의 이동은 슬리핑 버스다. 몇 번 타봐서 조금은 익숙하긴 하지만, 10시간가량을 달리는 것도 그렇고 여전히 낯설어서 즐겁다. 가는 도중에 계속 호객을 하며 길가에 나와있는 사람을 계속 태우고, 더 이상 앉을자리가 없을 때까지 손님을 태우고, 버스 안 어딘가에서 담배냄새가 나서 쳐다보면 기사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던가, 재밌는 일들이 넘치는 버스다.


제일 흥미로웠던 건 저녁식사다. 다낭에서 닥락으로 이동할 때, 저녁식사가 포함되어있는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처음엔 저녁식사가 포함되어있는 줄 모르고, 휴게소에 멈추길래 뭐라도 요깃거리를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버스 기사님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더니 그곳에 버스 승객들을 위한 식사가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식사를 나눠 먹었다. 내가 먹고 싶은걸 시키는 것도 아니고 차려진 메뉴를 마치 가족처럼 다 같이 나눠 먹는다. 버스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던 아저씨는 이런 상황을 이미 알고 계셨는지 작은 페트병에 베트남 전통술까지 담아 오셨다. 아저씨가 꺼내 놓으신 술도 테이블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눠 먹었다. 이건 정말 꼭 남겨놓고 싶은 기억이다.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다.


닥락에서는 관광 목적보다도,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게 주목적이었다. 엄밀히 말해 닥락을 다녀왔다기 보다도, 닥락성의 성도 ‘부온마투옷’에 다녀온 것인데, 생각보다 큰 도시라 깜짝 놀랐다. 베트남에 오래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다녀 본 도시라곤 다낭, 후에, 호찌민처럼 크고 유명한 도시들뿐이라 그런가 괜히 다른 도시들은 시골 마을 같겠지 싶었는데, 시내 중심으로 가려면 오토바이로 10분, 15분 이동해야 하는 큰 도시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G7커피의 원산지가 여기라고 하니, 확실히 얕볼 곳은 아닐 테다.

부온마투옷의 식물원


다음엔 달랏이다. 달랏은 그래도 비교적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이다. 내가 달랏에 제일 와 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한 문장 때문이다. ‘달랏의 하루에는 4계절이 전부 들어있다’ 베트남 친구들이 다들 달랏을 엄청 좋아하길래 뭐 때문에 그런가 하고 대충 구글링 해본 적이 있다. 그땐 ‘에이 그냥 한국의 봄이네’, ‘하긴 베트남엔 봄이 없으니까 봄이 보고 싶을 수도 있겠다.’하고 말았었는데, 한 친구의 말에 너무 궁금해져 버린 것이다.


달랏의 랜드마크. 아티소를 형상화한 모습이다.


그 친구의 말이 맞았다. 아침엔 봄 날씨처럼 선선하고 점심엔 한여름 처음 너무 더워서 반팔을 입어야 하고, 곧이어 마치 우리나라의 장마철 마냥 비가 온다. 낮이 끝나갈 무렵엔 비가 개고 하늘이 가을처럼 맑고, 저녁엔 겨울처럼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오토바이를 탄다. 달랏에서 지내는 내내 이 규칙이 변함없이 지켜졌다. 그래서 그런가 하늘에 무지개가 참 빈번히 뜬다. 정말 말 그대로 빨주노초파남보가 다 명확히 구분이 가는, 난생처음 보는 진하디 진한 무지개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달랏을 꽃의 도시라고 부르던데, 꽃이 많아서가 아니라 다채로운 색을 가진 탓이 아닐까 싶다.


달랏 기차역(왼쪽), 뚜옛띤콕(오른쪽)


시원했던 날씨 때문일까, 홈스테이의 좋은 호스트와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함께한 사람 때문일까? 달랏 여행이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여태 베트남에서 볼 수 없던 다채로운 색을 가진 달랏의 꽃들처럼 입가에 미소가 핀다. 달랏은 정말 뭐가 달라도 달랐다. 정말 온전한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행을 즐겨서인지 모르겠지만, 여태 봐온 베트남과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언덕길들과 그 아래로 보이는 싱싱한 딸기와 토마토를 품은 비닐하우스, 촘촘히 지어진 베트남식 유럽풍 건물들, 또 그 사이 공간을 채워주는 다양한 모습의 골목길까지 여태 봐 온 것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달랏에선 예쁜 카페를 찾는 묘미가 있다(왼쪽) / 달랏의 어느 토마토 농장(오른쪽)


달랏에서 많은 곳을 가보진 못 했지만 오토바이로 예쁜 카페를 찾으려고 누볐던 수많은 골목길 때문인지 달랏을 속속들이, 빠짐없이 들여다본 느낌이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다시 와 보고 싶다. 특별한 게 없었는데도, 뭔가 특별했다.


도시를 가지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참 웃기지만, 달랏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겉보기엔 뭉툭하지만 속으론 수많은 골목길을 숨기고 있는 깊이감, 근처 도시들은 덥다고 아우성일 때 사계절을 가진 도시로부터 풍기는 여유, 각양각색의 농작물을 길러내는 아늑함까지 생각만 해도 참 매력적이지 않은가?


달랏 야시장


이렇게 베트남 휴가가 끝났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백패커에게 꿀 같은 휴가였다.


여행이 어떻게 좋기만 하겠는가. 좋은 것, 하고 싶은 걸 따라서 선택한 세계여행이었는데 항상 좋지만은 않더라. 가끔은 오히려 3박 4일, 4박 5일 짧고 굵게 왔다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힘들고 피곤한 모든 것들을 베트남에 잘 놓고 떠난다. 그러고 보니 다낭에게 민폐만 끼치는 것 같다. 인간적으로 미성숙했던 나를 받아주고, 또 그런 나를 길러내주고, 지 하고 싶은 거 하러 떠났다가 힘들어서 징징댈 때 즈음에 다시 다낭으로 불러서 쉬게 해 주고.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이 정도면 정말 제2의 고향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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