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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Nov 08. 2019

2개의 언어를 가진 마을_Dansavan, Laos

교집합, 그 애매함.

다낭을 떠나 첫 번째로 정한 목적지는 라오스다. 라오스를 남부부터 북부까지 올라가며 둘러볼 계획이다. 우선 라오스로 넘어가기 위해, 6시 반에 다낭을 출발했다. 다낭 근처에도 라오스로 넘어가는 국경이 있기야 하지만 정보(후기)가 하나도 없어 두려웠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 좀 더 보편적인 국경마을, ‘라오바오’로 이동하기로 했다.



라오바오 국경검문소


라오바오에 도착하니 11시쯤 되었다. 꽤나 긴 시간이었지만, 전날의 송별회 때문이었을까, 아쉬움에 사무친 탓이었을까. 쏟아지는 잠과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채우다 보니 생각보다 금세 도착했다.


블로그에서 이곳을 통해 국경을 넘은 사람의 후기를 읽었다. 블로그를 보고 정보를 얻어버리면, 오롯이 내 거라는 느낌 없이, 공략집을 미리 봐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이 가진 두려움을 이겨내긴 힘들었다. 블로그에선 국경을 통과하기 어렵지 않다 말했지만, 난생처음 걸어서 국경을 통과하는 내겐 커다란 장벽 같았다. 이 장벽을 더욱 높게끔 만든 건, 공무원들의 불친절함도 아니고,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도 아니다. 단순히 안내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점이었다. 시스템은 별반 다를 건 없다. 베트남의 출국 도장을 받고, 라오스의 입국도장을 받으면 끝. 허나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쟤는 왜 저래?’라는 식의 시선을 받으며, 그저 다른 사람들의 뒤를 졸졸 쫓아다닐 뿐이었다.


그들에겐 어려움이 없었다.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들고 가서 확인받고, 서명하고, 투표용지를 받아 투표를 할 때처럼 익숙해 보였다.


‘이 곳 사람들에겐 국경을 넘어 다니는 건 일상이구나’



단사반 터미널의 버스 시간표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의 ‘라오바오’에서 라오스의 ‘단사반’으로 넘어왔다. 라오바오에서는 구경할 시간이 없어 둘러보지 못했지만, 단사반은 버스를 기다리며 점심도 먹고 잠시 구경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국경마을이라는 건 우리들에게 생소하다. 우리는 국경을 넘는 일이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니까.


유심칩을 구매하기 위해 핸드폰 가게에 잠시 들렀다. 습관처럼 베트남어로 그들에게 나의 요구사항을 이야기했는데, 전부 알아듣는다. ‘아니 잠깐, 여기 라오스가 아니던가? 내가 국경을 넘었던가?’. 어떤 화폐로 계산을 해야 할지 헷갈렸다. 베트남 말을 알아들으니 베트남 동을 받을 것 같고, 라오스 땅이니 라오스 낍을 받을 것 같았다. 두 손에 양국의 화폐를 쥔 채 고민하고 있으니, 주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적절히 섞어서 가져간다.


국경마을은 ‘와 여긴 어디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게의 간판도 두 가지 언어로 써져있고, 어떤 언어가 먼저인지는 가게 나름이다.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두 가지 언어를 쓴다. 자연스럽게 2개 국어를 해버리는 셈이다.


수학 시간에 배운 교집합의 의미를 몸소 체험했다.



팍세의 밤 거리


목적지는 라오스의 남부 중심도시 ‘팍세’다. 단사반에서 팍세로 한 번에 가는 직행 버스는 없다. ‘세노’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한다. 물론 ‘세노’까지 가는 버스가 아니라 ‘비엔티엔’으로 들어가는 길에 세노가 있을 뿐이다. 손에서 구글맵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세노를 놓치면 안 되니까. 단사반부터 세노까지는 총 4시간이 소요되었다. 다행히 세노에서 버스를 잘 갈아타고 팍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시간은 총 6시간. 오전 6시 30분에 시작한 하루가 다음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버스를 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버스정류장에서 목적지 만을 반복해서 여기저기 묻다 보면 누군가가 알려주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사실 숙소 체크인이 걱정이었다. 도착해서 여기저기 발품을 팔며 찾아보는 게 계획이었지만 도착 예정시간은 새벽.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간신히 네트워크를 연결해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에 미리 예상 도착시간도 알려주었지만, 도착했을 때는 역시나 프런트엔 아무도 없었다. 유리창을 두드려 직원을 깨웠다. 자다 깨 화날 법도 한데, 그녀의 표정은 밝았다. 이제야 안심이 되었다.


익숙한 집합을 떠났고, 애매한 교집합의 혼돈에서 헤매었다.

그러다 낯선 다른 집합으로부터 환영을 받으니 하루의 노곤함이 가신다.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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