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다님’ 그 중간의 불편함
여행 첫날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어느 쪽이 천사의 속삭임이고, 어느 쪽이 악마의 속삭임인지 알 겨를은 없지만, 속에서 ‘쉼’과 ‘다님’이 대립했다.
이 여행은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대로 선택하고, 좋아하는 대로 움직이며 ‘아 나라는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하면서 깨닫고 싶어서 여행을 시작한 거다.
잠자리가 바뀐 첫날이라 그런지 잠을 설쳤다. 어제 하루를 분명 일찍 시작하고, 밤늦게 도착해서 피곤했을 법도 한데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그렇다고 아침의 시간 동안 ‘다님’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숙소에서 간단히 조식을 먹고 침대로 돌아가 ‘쉼’을 챙기기만 했다. 아무런 계획 없이 목적지만 정해 놓고 온 곳이라 이 곳에는 어떤 볼거리들이 있는지,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해가 높이 솟았다가 기울 때까지 숙소 침대에서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며 그냥 누워 있었다.
누워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불편했다. 침대가 불편해서도 아니고, 에어컨이 없는 방이라 더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몸이 아닌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 쉬는 거야.’, ‘나는 쉬는 걸 좋아해.’, ‘나는 쉬고 싶어.’, ‘이럴 때도 있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게 진정 나의 속마음인지,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꾸만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나가서 걷자.’라고 결심이 서는데 까지는 의미 없는 몇 개의 유튜브 클립이 더 필요했다. 한참을 더 불편함을 안은 채로 누워있다가 준비를 하고 나왔다. 하늘에선 나를 비웃는 건지, ‘오늘은 나가지 말고 쉬어’라고 말하는 건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세운 결심인데, ‘쉼’에게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지만, 그건 날 더 괴롭게 만들 뿐이었다.
‘쉼’과 ‘다님’ 어느 쪽이 내게 내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여행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저 내가 좋아하는 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의 난 좋아하는 대로 하지 못 할뿐더러,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있다. 스스로가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몸은 움직이지 않으니,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에 갇힌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뭐고, 또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그걸 알아내려고 오롯이 혼자 떠나 온 거니, 그저 고달픈 과정이라 생각해야 하는 걸까. 나도 안다. 이 질문은 60살 노인이 되어서도 답이 안 나올 거라는 걸. 하지만 벌써부터 답을 내는 게 욕심인 줄 알면서도, 답을 당장 알고 싶긴 하다. 그러면 불편함이 조금 덜 할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참 미운 날이다.
나를 알아가는 여행이라 재수 없고, 꼴 보기 싫은 나를 만나기도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