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없는 여행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그럴듯한 관광지, Tad Fane(Fane폭포)에서 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서로가 서로에게 서툰 영어로 대화하며 사진을 찍어줬다. 그녀는 내게 혼자 여행을 다니냐며, 좋다고, 너는 Lucky야 라고 말해줬다. 글쎄, 어디가 그렇게 Lucky일까?
혼자 여행하는 게 럭키인지는 모르겠지만, 운이 좋긴 하다. 하루 종일 비가 오다 안 오다를 반복하는 우기 속에서, 운이 좋게도 날이 좋다. 어떤 걸 해보면 좋을까 싶어 숙소 매니저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비가 와서 물이 많을 거라 근처의 폭포 몇 군데가 장관일 거라 했다.
운 좋게도 처음부터 너무 멋졌다. 폭포의 멋진 광경에 눈이 멀어 한동안 떨어지는 폭포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는 듯했다. 사실 나는 음악에는 문외한이라, 음악 관련 공연에 가면 음악을 듣는다기보다는 음악을 들으며 생각나는 것들에 대해 집중한다. 그것이 음악이 주는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곳의 폭포가 그랬다. 폭포와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들을 하느라 폭포 앞에서 떠나질 못했다. ‘저 물은 어디서 온 걸까?’로 시작한 생각은, ‘이 물은 흘러 어디로 갈까?’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로 번지더니 ‘나는 왜 이 길에 올랐나’ 같은 본질적인 질문까지 번져갔다. 지금 당장 답을 내릴 순 없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시간이 생긴다는 건 기분 좋다.
다른 폭포는 눈으로 보는 폭포로 그치지 않고 수영을 할 수 있었다. 갈아입을 옷도 챙겨 오지 않았고, 물은 차고 깊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엔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눈을 질끔 감고 뛰어들었다. 물에서 먼저 놀고 있던 라오스 현지인들과 함께 놀았다. 무섭게만 느껴졌던 관리인 아저씨께 부탁해 함께 사진도 찍었다. 사실 그들 때문에 물에 뛰어들기가 망설여졌었다. 노는 사람들이 그들뿐이라서, 그들의 프라이빗한 시간을 외국인인 내가 방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되려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나 보다. 나를 혼자 놀게 두기보단 함께 놀다니 참 감사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들른 식당은 완벽했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 탓에 국물이 있는 국수를 시켰다. 간은 적절했고 국물은 몸이 다시 따뜻해질 만큼 따뜻했다.
하루 종일 운이 좋았다. 운 좋게 멋진 폭포, 운 좋게 좋은 시간, 운 좋게 받은 친절, 운 좋게 만난 맛집. ‘초반부터 운을 다 끌어 써버린 거면 어떡하지?’, 이만큼 즐겁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어디가 그렇게 운이 좋았던 걸까. 그저 다니다가 멋진 폭포를 만난 거고, 가만히 폭포를 보다 보니 좋은 시간이 생겼다. 내가 물에 뛰어들지 않았으면 친절 또한 느끼지 못했을 테고, 맛집 또한 없었을 거다. 행복에, 즐거움에 운이 있다면, 글쎄 그 운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감히 도전해서 즐기면 운이고 뭐고 간에 즐거운 거 아닐까.
운 없는 여행을 하고 싶다. 우연히 운 좋게 얻어걸리는 여행 말고, 내가 만드는 여행. 무언가 우연히 운 좋게 얻어걸리더라도, 내가 만든 거라고 믿는 여행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