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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Apr 18. 2020

여행자, 혹은 현지인_Bangkok, Thailand

그 묘한 줄타기, 아이러니

가족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다시 내 여행이 시작된 거다. 혼자 방콕에 있었던 시간은 비교적 짧기에 방콕에서 조금 더 머물 생각이다. 마침 라오스에서 만난 태국 친구, 토리가 방콕에 있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꽝시 폭포 투어를 다녀왔다. 지난번 방비엥에서 투어를 할 때는 핸드폰, 선글라스, 지갑, 기타 등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다가, 결국 전부 잃어버리거나 물에 빠뜨렸다. 다신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엔 많이 내려놓았다. 현금과 몸만 들고 투어를 나섰다. 그 때문인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물건을 나의 수식어라고 표현하긴 어렵겠지만, 수식하는 것들을 내려놓은 셈이다. 내 안에 잠재되어있는 나도 모르는 내가 자연스레 나왔다. 몸이 가벼워 신났다. 일일 가이드라도 된 것처럼 서로를 인사시키고 했으니 말 다했지. 그 덕에 투어를 함께하는 사람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그때 만난 게 토리다.


그때 조금은 헐벗은 채, 민낯의 나를 보여주며 만났기 때문일까.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토리는 방콕에 머물고 있으니까 여행 중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마침내 방콕에 도착했을 때 잠깐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며 연락했다. 함께 무언가를 하면 더욱이 좋겠지만 나는 이방인이고, 그는 그의 일이 있을 테니 부담을 줄 순 없었다. 하지만 토리가 먼저 본인의 집에서 지내는 걸 제안해왔다. 차 한잔, 맥주 한잔 마시는 정도를 상상했는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덕분에 현지인의 삶을 조금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내 평생 첫 카우치 서핑이다.


후아타케 마켓의 카페와, 시장 골목


토리네 집 근처에 있는 ‘Hua Ta Khe market’에 다녀왔다. 생각 외로 예뻐서 맘에 들었다. 게다가 방콕을 찾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아직은 잘 모르는 곳이라 더 좋았다. 괜히 내가 처음이라는 생각에 들떴고, 내가 찾은 곳이라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사실 시장의 입구는 다른 시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더 안 쪽으로 들어가서 다리를 건너면,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장소가 나온다. 강변을 따라 작은 상점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게 재밌다. 토리네 집에 머물며 이 곳을 자주 방문했다. 강을 따라 걸어보기도 하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강 너머로 해 떨어지는 걸 구경하고 돌아오곤 했다.


후아타케 마켓


후아타케 마켓에서의 선셋


토리가 일을 나가고 없을 때는 집에서 쉬거나 방콕에서 가보려고 찜해뒀던 곳들을 다녔다. BTS나 공항철도, 쏭테우 같은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라 시간이 오래 걸려도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나는 시간은 많지만 돈은 없는 여행자니까. 글쎄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게 참 좋다. 대중교통에 안에서의 시간이 참 좋다. 지하철이 주는 감성이 참 좋다.


툭툭과, 버스


나는 이곳에서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다. 그들의 일상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여행자’다. 제 3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일이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한국에서 같은 칸에 탔던 외국인들도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마치 신이 되어 창조물들을 연민의 눈으로,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는 기분이다. ‘저들도 그때의 나처럼 피곤하겠지.’하며 연민을 느끼고, 나도 그저 창조물로써 저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숨 쉬고 싶어 한다. 그렇게나 소속감을 답답해했으면서, 소속감으로 부터 도망쳐 나온 여행이면서, 현지인의 삶에 ‘소속’되는 느낌을 느끼고 싶어 하는 거다.


속하고 싶지 않으면서, 속 할 수 없으면서, 속해 보고 싶어 하는 묘한 아이러니가 재밌다. 자유를 찾아 떠나온 길에서 누가 날 소외시키지도, 외롭게 만들지도 않았는데 다시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다니. 괜히 최대한 이곳에 사는 사람인척 행세해본다. 노선도도 보지 않고 방송만을 듣고 지하철을 내린다. 그리곤 모든 출구가 익숙하다는 듯 지하철역을 빠져나간다.


자주가던 후아타케 마켓의 카페


여행하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들의 소개로 현지인들만 아는 숨겨진 장소들을 만난다. 현지인 친구 하나로 현지인이 된 것 같은 묘한 소속감을 느끼는 거다. 여행자와 현지인의 경계,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재밌다. 여행자로서도, 현지인으로서도 존재하고 싶지 않다. 그저 줄 위의 묘함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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