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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Apr 27. 2020

방콕 근교 여행_Auttaya, Thailand

방콕 여행(X), 방콕 생활(O)

토리의 휴일에 맞춰, 함께 방콕 근교를 여행했다. 가짜로 절들의 모양만을 만들어 놓은 ‘므앙보란’ 말고, 진짜 고대도시 ‘아유타야’를 다녀온 것이다. 그리고 방콕에서 제일 하고 싶었던, 방콕 근교 태국 사찰에서 타투를 받는 일 또한 토리와 함께했다.



TATTOO


태국은 타투가 만연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듯하다. 과거의 태국에서의 타투는 패션이 아니라, 부적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국의 승려들도 타투가 꽤나 많으며, 우리가 절에서 부적을 받아오듯, 타투를 받아 오곤 한다. 이러한 타투는 안젤리나 졸리를 통해 더욱이 유명해졌다. 부적과 같기에 위치와 디자인을 정할 수 없는 타투. 본인의 팔자에 맞는 부적을, 그러니까 타투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쉽겠다. 조금은 모험일 수도 있겠지만 세계여행을 계획하며 꼭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였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타투를 해주시는 승려님들의 좌상


나야 태국인 친구를 데리고 갔으니 소통에 문제가 없었고, 절에서의 예의범절 또한 쉽게 따라 할 수 있었지만, 혹시라도 혼자 방문하게 된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타투 머신이 아닌, 전통적인 방법을 따라 대나무 침을 이용해 시술을 하기에 굉장히 아팠다. 이렇게 두 가지만 빼고는 큰 불편함은 없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어 낼 수 있었다.


타투 받기

AYUTTAYA


아유타야를 알게 된 건 토리의 추천이었다. 앙코르와트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신비로워 보였다. 규모도 꽤나 커서 놀랐다. 마을 하나가 아예 고대의 사원들로 가득했다. 돌아보려면 오토바이가 필요했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빌린다고 한들,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구경하기엔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다.


무너져 내린 아유타야의 사원들


사원들은 대부분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모습이었다.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종교와 관련된 전쟁이기에, 수많은 불상들이 목이 없고, 금박들이 전부 뜯겨나가 지저분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전쟁으로 인해 더 많이 손실된 사원이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인간이란 게 이렇게나 잔인할 수 있구나’. 남들의 상처와 아픔을 구경하고 싶은 욕망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또한 상처를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내세우며 관광지화 시킬 수 있는 걸까?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하긴, 상처를 구경하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무너져 내려간 사원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 곳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이제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버린 사원



FINISHED


토리와의 짧은 여행이 끝나고 다시 혼자가 될 시간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태국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은 누군가와 함께 했다. 라오스에서부터 함께한 승호와 방콕으로 휴가를 온 가족들, 그리고 토리까지. 혼자였던 시간은 사실 많지 않다. 가족들이 떠날 때만큼 까진 아니지만 집에 홀로 남겨진 강아지처럼 분리불안증을 겪는다. 물론 나는 제 발로 걸어 나간, 그리고 제 발로 걸어 나갈 강아지이기에 억울해 할 수 없는 게 조금은 다르지만, 다시 혼자가 되려니 불안하다. 누군가 그러더라. 내가 세계 이곳저곳을 다녀서 대단한 게 아니라 ‘혼자’와 ‘같이’를 반복, 겪으면서 그 걸 고민하고 성장하려 하는 게 대단한 거라고. 내가 그렇게까지 대단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혼자’와 ‘같이’를 반복하면서 나를 알아가고 나와 조금 더 가까운 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토리는 일하러 나간 새에 집 앞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곤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서 초밥을 샀다. 집에서 퇴근하고 기다릴 토리가 생각나 토리 것도 골랐다. 또한 편의점에 들러 같이 나눠 마실 맥주도 샀다. 양손 가득, 봉투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 순간의 기분이 행복했다. 방콕 ‘여행’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지 방콕 ‘생활’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남들이 보기엔 ‘여행’ 일 수 있으나 사실 방콕에서는 한 게 별로 없다. 어딘가를 가거나 본 게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니까. 집에서 쉬거나, 집 앞 카페를 다녀오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생활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방콕에서의 ‘생활’이 이렇게 끝이 났다.


토리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숙박은 물론이거니와, 교통비에 밥값까지. 염치가 있어서 조금 토리가 허용하는 범위만큼은 보탰다만 그걸론 아마 턱 없이 부족할 것이다. 토리가 한국에 방문할 날을 고대한다. 그때 내가 한국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있는 힘을 다해 토리를 대접하고 싶다. 우리 집에서 재우고 지하철, 버스, 택시 타는 법을 알려주고, 운전기사를 자청하고 싶다. 집 앞 포장마차에서 산낙지에 소주 한잔 하는 날을 고대한다. 토리가 산낙지를 보며 기겁할 날을 고대한다. ขอบคุณมาก โตริ. แล้วพบกันอี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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