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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May 01. 2020

1달러와 앙코르와트_To Siemreap

고정관념에 대하여_1

캄보디아 씨엠립으로 넘어왔다. 방콕에서부터 한 번에 이동하기에는 힘들어서 태국의 국경마을 Aranyaprathet에서 하룻밤을 잤다. 국경마을이 주는 묘한 매력이 역시나 즐겁게 만든다. 여권에 새로운 도장이 찍힌다는 설렘은 물론, 입국심사와 출국심사를 거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과, 국적 없는 음식점과 슈퍼마켓들까지 이런저런 모습들로 시끌벅적한 모습이 즐겁다.


출입국은 어렵지 않다. 출입국사무소의 안내표지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어느새 캄보디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캄보디아는 입국 시 비자가 필요했다. 미리 준비해갈 필요는 없고, 출입국사무소에서 도착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어서 간단하다. 별건 아니지만 여권에 도장이 찍힐수록, 더군다나 사증이 붙을수록 프로 트레블러가 되는 것 같아 기쁘다. 여권의 깔끔함과 만족감은 반비례하는 게 재밌다.


방콕 Latkrabang에서 Areanyaprathet까지의 기차 티켓 / 기차내부의 모습


씨엠립까지는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다. 일종의 택시를 쉐어 하는 게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고 한다. 마침 같은 시간대에 국경을 넘는 다른 여행객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요금을 흥정하는 건 어떨까 생각하면서도, 나라도 싸게 타겠다는 심보로 나만의 흥정을 이어갔다. 하지만 결국 이 곳에 외국인은 나와 저들, 넷뿐이다. 저들과 차량을 함께 타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흥정한 차량에 그들이 뒤따라 탑승했다. 재밌는 건 그들과 나의 요금이 달랐다는 점이다. 기사님의 논리는 뒷자리에는 세명이 짐과 함께 타서 불편할 테니 저렴하고, 앞자리는 그래도 좀 더 넓어 편할 테니 비싸다는 거다. 나는 동남아를 여행하며 이미 이런 논리가 익숙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나 보다. 차가 출발한 지 꽤 되었음에도 그들은 한참을 씩씩거렸다. 심지어 더 내는 쪽은 나였는데 말이다.

차량이 도착한 건 씨엠립이 아니었다. 차량은 우리를 씨엠립 외곽에 내려주고, 툭툭이와 연결시켜 주었다. 이미 기사님의 지인이 툭툭이를 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지출의 발생, 더군다나 우리를 태워왔던 기사님은 본인의 논리를 계속 주장하며 돈을 더 받기를 원했다. 동행들은 펄쩍 뛰며 모두를 사기꾼 취급했다. 치열한 썰전이 오가고, 한참을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을 주고받았다.

어쩌면 내가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이상한 논리에 이미 적응해버린 탓도 있겠지만 고작 1,2달러에 흥분하는 모습이 불편했다. 조금만 양보하면 서로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었을 텐데, 얼굴을 붉혔고, 욕설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자극했다. 나는 조금 더 지불하고 빨리 대화를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끝까지 싸워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만 지불하는 대신 씨엠립까지 한 시간 반을 걸어 들어가기로 했다. 캄보디아보다 객관적으로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인데 푼돈에 욕설을 주고받다니. 아니 어쩌면 내가 너무 흔히 말하는 호갱처럼 인생을 살아왔나? 한편으론 배운 점도 있다. ‘이렇게까지 경비를 절약해야 하는구나’하면서 말이다.


일출을 등에 업은 앙코르와트


캄보디아에서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곳은 단연코 앙코르왓이었다. 함께 차량을 타고 왔던 폴과 숙소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투어를 예약했다. 가이드는 없지만 툭툭이 하나를 종일 빌려 타기로 했다. 사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하루 종일 앙코르왓에 앉아있는 상상을 했었다. 하루는 가이드 투어를 하고, 하루는 개인적으로 방문해 사원을 종일 바라보며 책도 읽어보려 했었다. 툭툭이를 타고 아침에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 ‘일출을 보다가 울면 어떡하지’하는 기대에 부풀었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가 보다.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다. 일출도 보고, 유명 사원들을 하루 종일 구경했으나 감탄이 나오는 곳은 없었다. 대신 종일 함께 다녔던 폴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친해질 수 있었다.


바이욘사원 / 타 프롬 사원 / 타 프롬 사원


푼돈에 여유로울 줄 알았던 외국인 여행자들, 멋있고 즐거운 구경거리일 줄 알았던 앙코르왓, 생각과는 다르게 매일 변하는 일정들까지. 생각했던 것들과는 다른 것들이 계속 생겨난다. 나는 얼마나 깊은 편견과 고정관념의 호수 속에 살고 있었던 걸까. 언제쯤 맑고 투명한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긴 할까? 그건 너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삶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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