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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May 04. 2020

수상가옥_Tonlesap Lake, Cambodia

고정관념에 대하여_2

앙코르왓보다 만족스러웠던 곳은 다음날 찾았던 ‘플로팅 빌리지’다. 말 그대로 수상가옥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자전거를 타고 왕복 한 시간을 달려, 씨엠립의 남쪽, 톤레삽 호수의 플로팅 빌리지에 다녀왔다.


어떤 이들은 캄보디아를 가난한 나라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가난이 궁금했다. 캄보디아의 도심이 아닌 시골 마을이라면 내가 궁금해하는 가난을 마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나의 삶과는 무엇이 그렇게나 다른지 궁금했다. ‘서민체험’이 아니냐는 물음에 ‘아니’라고 답을 할 순 없겠다. 자위성 변명을 하자면, 이들과 섞이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로 멀찍이 떨어진 보트에서 정말 그들의 가난을 구경만 하고 가는 투어 상품을 나는 이용하지 않았다. 정말 그들의 삶이 궁금했고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한편으로 ‘가난은 불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에서 살아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정말 그들은 가난으로부터 비롯된 불행을 안고 살고 있을까? 그런 게 궁금했나 보다.




가는 길에 배가 고파서 작은 식당에 들렀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며, 머쓱한 미소와 함께 커피를 내민다. 한잔 마시며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거다. 식당의 꼬마 아가들이 날 보자마자 대뜸 미소 지으며 달려와 안긴다. 그리고는 한 동안 놓아주질 않는다. 밥을 기다리는 내내 그들과 숨바꼭질을 해야 했지만 하나도 귀찮지 않았다. 즐거웠다. 그들 덕분에 나의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플로팅 빌리지로 다시 향하는 길에서도 모든 사람들도 외국인인 내가 신기했는지 나를 향해 손인사를 하며 미소 지었다. 나 또한 절로 미소가 멈추지 않았다. 페달을 밟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숨바꼭질을 멈출 수 없게 만든 식당의 남매


플로팅 빌리지는 별세계였다. ‘사람이 살 수는 있어?’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 위에 자그마한 배가 가득하다. 배는 그들의 침실이었고, 뱃머리가 그들의 마당이 되었다.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도 있고, 아이들에게 밥을 떠 먹이는 아줌마도 있다. 부모님이 비운 ‘배’, 그러니까 ‘집’을 지키는 꼬마도 있었다. 학교의 역할을 하는 배, 마을회관의 역할을 하는 배도 있었다. 그들의 삶은 내가 상상했던 불행과 거리가 멀었다. 먹고 자는 다를 뿐 사실 우리들과 다를게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즐거워 보였다.


<플로팅빌리지 관광 상품> 보통 우측의 전망대에서 잠깐 내려, 좌측의 플로팅빌리지를 구경한다.


갓 스무 살이 됐을 때쯤 받았던 충격이 떠오른다. 당시 난 택배 아르바이트를 했다. 흔히 이야기하는 택배 상하차 말고, 택배 기사님과 함께 배송을 하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일한 곳은 재개발이 끝난 소위 말하는 부자 동네였다. 나는 재개발을 기다리는 저렴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으로서,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질투했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높은 솟은 아파트만큼이나 차갑고, 정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 아파트는 놀이터의 평상에 두루 앉아 이웃끼리 오손도손 수다를 떠는 모습이 가득한 따뜻한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생각과 달랐다. 고급 아파트에 배송할 땐 많은 사람들이 내게 미소 지었다. 배송을 가면 집 냉장고를 뒤져 요구르트 하나라도 건네고, 엘리베이터에서 수고하신다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심지어 선물이 너무 많다고 나더러 가져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여유로워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반면에 우리 동네는 나에게 반말은 기본, 택배가 늦었다며 내게 화를 내는 상황도 많았다. 여유가 없었고 불행해 보였다. 그때 생각했다. 풍요는 여유를 만들어 미소를 만들고, 부족은 조바심을 만들어 냉소를 만든다고. 풍요가 행복을 만든다고 믿기 시작했다.


이동용 배를 정박시키는 소년


플로팅 빌리지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 내 생각엔 변화가 없었다.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이고, 고로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나쁜 말로 어쩌면 그들의 불행을 구경하러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나와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나보다 미소가 많았고, 미소가 넘쳐흘러 나를 미소 짓게 만들 정도였다.

플로팅빌리지의 천사들


플로팅 빌리지에서 수많은 미소를 봤다. 담배 피우던 아저씨도, 아이들에게 밥을 떠먹이던 아줌마도, 배를 지키던 꼬마도 나를 향해 웃어줬다. 학교호(號)와, 마을회관호에도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수 없이 많은 미소와 웃음이 있었다. 여태까지 나의 생각들에 따르면 이들에게 미소가 있어선 안 되는데, 힘듦과 짜증으로부터 시작된 냉소만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들이 미소 지었다. 그들의 가난이 분명히 조바심을 만들고 냉소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들이 웃었다. 그들을 통해 많은 반성을 한다.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깨닫는다. 미소는 행복의 지표이고, 풍요가 미소를 만든다 믿었었다. 풍요를 쟁취하고자 열심히 달려왔었다. 하지만 풍요와 부족은 미소와 연관이 없으며, 행복과는 더욱이 연관이 없다는 걸 이제야 다시 깨달았다.


그들에게 어떻게 가난하니 불행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가난이란 상대적인 금전이라는 줄자 속에 상대적인 표현일 뿐, 가난과 행복은 연관이 없다. 객관적으로 내가 그들보다 금전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다. 하지만 금전이 아닌 행복이 기준이 된다면? 오히려 부족한 건 내 쪽이 아니었을까?


돌아오는 길에 만난 선셋


매일매일 나의 고정관념들과 편견을 깨는 일들이 생겨난다. 그들의 불행을 궁금해하고, 스스로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은 언제쯤 그쳐질까? 그저 깨지면 깨질수록 전보다 성장하는 나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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