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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Aug 24. 2020

동남아시아 일주의 끝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

    6개월 간의 동남아 일주가 끝났다. 내일이면 아침 일찍 미니밴을 타고 중국으로 건너간다. 글쎄, 중국의 남부지방도 동남아시아로 쳐야 하나? 그런 게 아니라면, 정말 동남아시아 여행은 끝이다.


라오스, 방비엥, 남싸이뷰


    문득 세계여행을 처음 계획했을 때가 생각난다. 첫 계획의 목표는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 보는 것뿐이었다. 일을 마치는 대로 비행기를 타고 그곳으로 넘어가, 순례길을 걸은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그곳까지 육로로만 가볼까?’하며, 이런저런 살이 붙었다. 그렇게 동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계획에 추가하게 된 것이다. 사실 지금 내가 여행을 마친 동남아시아는 그저 거쳐가는 곳일 뿐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시작점인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길에 거쳐가는 곳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 곳은 안중에 없었다. 베트남에 1년을 살기도 살았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이니, 굳이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동남아시아의 문화보다는, 서양문화를 더 선호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선호 이상이다. 격한 표현을 덧 붙이자면, 나는 동남아시아 문화와, 서양문화의 우열을 따졌고, 항상 서양문화를 우위라고 치켜세웠다. 친구들과 장난스레 ‘나는 사대주의야.’라고 이야기하며 서양문화를 칭송했다. 국내 영화, 아시아 영화보다 할리우드 영화, 유럽권 영화들을 좋아하고, 가사 뜻도 모르면서 팝송만을 듣기 바빴다. 맥도날드의 새 메뉴는 꼭 먹어야만 했고, 스타벅스만을 찾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이게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게 더 문화적으로 앞서 나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생각이 얼마나 좁아터진 생각이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동남아 여행이 끝난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


    이 말을 이제야 격하게 공감한다. 그래, 동남아시아의 문화는 틀린 문화가 아니다. 절대 뒤 떨어지는 문화가 아니다. 그저 다를 뿐, 각자 다른 매력을 가졌을 뿐,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지 따질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왜 여태까지 서양문화만을 우위라 생각한 걸까. 동남아시아의 문화는 한 번도 제대로 겪어 본 적 조차 없으면서 말이다. 이런 나를 이제야 반성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맥도날드가 좋다. 이건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베트남에서 먹는 로컬 햄버거도 맥도날드만큼 좋다. 둘은 분명 다른 햄버거지만, 각자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내겐 맥도날드도, 로컬 햄버거도 다 맛있으니까.

태국, 카오산로드의 상징

    동남아는 매력적인 곳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은 없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참 멋지다. 멋진 매력포인트를 곳곳에 숨겨 두었다. 숨 막힐 듯이 많은 오토바이의 행렬이 멋있다. 노천 식당에서 쭈그려 앉아 먹는 음식은, 깔끔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근사함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졌으며,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을 주고 먹었다는 만족감과는 또 다른 만족감을 준다. 사람들과 보다 편하게 영어로 묻고 영어로 대답하기에는 불편하지만, 그만큼 정겨움과 포근함이 늘 함께했다. 다른 멋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다른 멋짐에 홀딱 반해버렸다. 글쎄, 바이브라는 말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나는 이 동남아시아의 바이브를 사랑하게 되었다. 정말 많이.

세상 모든 여행이 마찬가지일 테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많이 이곳에서 만들었다. 아니, 순간을 넘어 6개월간의 모든 시간을 나는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두 달만 머물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졌다고 후회할 생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다. 생각보다 예산을 더 쓰게 됐다고 아까워할 생각 또한 없다. 원래부터 계획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여행이었고, 돈으로는 바꿀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이곳에서 얻고 가니까.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으니까.

    6개월을 머물렀음에도, 아직 모자라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다. 하지만 아쉬움을 남겨둬야 다음에 또 돌아올 명분이 생길 테지. 그래, 나의 이 큰 아쉬움을 이렇게나마 위로해 본다.

캄보디아, 시엠립, 앙코르와트

    동남아의 날씨 때문이었을까, 돌아보면 동남아시아에서의 지난 6개월이 너무 따뜻했다. 엄마의 품처럼 정말 말도 안 될 만큼 따뜻하다. 이 품을 벗어나도 괜찮을까라는 걱정도 든다. 이렇게나 따뜻한 곳에서 벗어나려니 너무 두렵다.

    아니, 만날 두렵다고 말하는 것만 같네.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두려워만 할 거지?


베트남, 하장, 룽꾸

아무튼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 동남아시아에게 참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래, 언젠간 또 보자. 안녕! 잘 있어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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