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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Aug 27. 2020

걸어서 국경 넘기_Nanning,China

국경을 넘는 일이 이렇게나 힘들 일인가?


    나는 강하지 않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나는 낯을 가린다. 나는 먹던 것만 먹는 편식도 한다. 배낭여행자로서 단점으로 작용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조금씩 있다. 오늘 내가 강하지 않다는 걸 크게 느꼈다. 나도 피곤해할 줄 알고, 힘듦을 느낄 줄 아는 여행자다.




    국경은 넘는 건 내게 일상이었다. 육로로만 하는 여행이니 국경을 넘는 일은 필수다. 그렇게 오늘도 국경을 넘었다. 여느 국경을 넘던 그 순간과 다를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 다른 게 있다면 편한 곳에서 불편한 곳으로 간다는 점이다. 내가 알던 곳에서 모르는 곳으로, 내가 가본 적 있는 곳에서 처음 가보는 곳으로 간다는 것뿐이다. 분명 이전에 국경을 넘을 때도 긴장감이 있기야 했지만, 설레는 마음이 훨씬 컸다. 설레는 마음으로 긴장감을 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편했던 곳에서 떠난다.’는 사실만이 자꾸 머릿속을, 그리고 마음속을 헤집는다. 긴장감을 누를 수 없었다. ‘지금, 이렇게 기분이 딱 좋을 때 여행을 그만 할까?’하는 생각도 했다. 여태 뭐 얼마나 편했다고, 그리고, 뭐 얼마나 불편한 곳으로 가는 거라고 이런 생각을 할까


    그래, 나는 지금 국경을 넘어 중국 남부지역의 도시 ‘난닝’에 와 있다.


    국경검문소에는 나가려는 사람, 들어오려는 사람, 또 못 나가는 사람, 못 들어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중국이 베트남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관리하려는지, 베트남 사람들의 입국 심사는 꽤 까다로워 보였다. 입국심사에서 거절당하는 사람을 이곳에서 처음 봤다. 그것도 여러 번, 여러 명이 거절을 당했다. 그런데, 그렇게 거절당한 베트남 사람들이 포기를 모른다. 새롭게 줄을 서지 않고, 입국신고서를 살짝 고쳐 다른 쪽 입국심사대로 바로 간다. 그러면 그 사람의 뒤를 따라 줄을 서있던 베트남 사람들이 하나 둘 줄을 옮긴다. 한쪽의 입국심사가 조금 수월하다 싶으면, 모든 사람들이 새치기를 일삼으며 쉬워 보이는 쪽으로 몰리는 것이다.

    이 틈바구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자꾸만 새치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상황이 종료되기만을 가만히 줄을 서서 기다렸다. 부디 새치기하는 사람들이 입국에 성공을 하건, 혹은 공무원에게 쫓겨나 건 간에 어서 내 앞에 사람들이 줄어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줄이 도통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중국의 한 공무원이 유일하게 다른 색깔의 여권을 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행히 그의 도움으로 그 틈바구니에서 벗어났다. 그가 나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마 아직도 입국 사무소에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입국심사에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난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한 여행사에 위탁했는데, 손님이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였다. 나 혼자만 이동하는 것이라면 상관없겠다만, 단체 관광객의 무리에 섞여서 이동하는 것이라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서 입국심사를 마치고 난닝 시내까지 태워다 줄 관광버스를 탑승해야 하는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전부 중국인들인지 입국 심사를 일찍 마치고 버스에 탑승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입국 심사가 끝날 때까지 버스는 출발하지 못하고 나를 한참 동안 기다렸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그 버스의 마지막 탑승자가 되어, 나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눈총을 맞았다. 나는 순식간에 어글리 코리안이 되었다.



    버스에서 한참을 곯아떨어졌다. 중간중간 신원 확인을 위해 검문소 같은 곳에 멈춰 서서 공무원이 버스에 올라 신분증을 확인하던 순간 외에는 전부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어느새 버스는 난닝 시내로 접어들었고, 눈을 떠보니 창 밖에 높은 빌딩들이 가득했다. 순식간에 바뀐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분명 베트남어로 된 간판이 보여야 할 것만 같은데,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한자로 된 간판들만이 빌딩에 붙어 있었다.



    두 번째 난관은 숙소를 찾는 일이었다. 숙소를 찾기가 이만큼이나 어려웠던 적이 없는데. 물론 내 탓도 있다. 오프라인 지도를 깜빡 잊고 미리 다운로드 해오지 않은 탓이다. 내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 있었지만, 지도가 로드되지 않아, 텅 빈 화면에 파란 점만 찍혀 있을 뿐이었다. 내가 가진 숙소에 대한 정보라곤, 빌딩의 사진과, 중국어로 된 주소뿐이다. 이를 거리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길을 물었다. 주소를 보여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긴 했다. 그런데 가리키는 곳이 전부 달랐다. 또한 가리킴에 덧붙인 설명이 전부 중국어라 그 어떤 것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게 문제다. 중국에선 영어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하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결국 나 혼자 중국어로 적힌 주소와 외벽에 적혀있는 한자를 그림처럼 하나하나 비교해가며 숙소를 찾아냈다.

    여기선 잘못했다간 길을 잃겠다. 당장 데이터를 활용한 지도를 볼 수 있게끔, 유심칩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유심칩이 오늘의 마지막 난관이 되었다.


    유심칩을 구하기가 이렇게나 어려울 줄이야. 보통 어느 나라를 가도 관광객을 위한 유심칩이 존재했는데, 시내 어느 매장을 방문해도 여행자용 유심칩을 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선불 유심도 없었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그들이 판매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단, 대화가 전혀 통하질 않으니 구매가 불가능했다. ‘SIM card’라는 단 한 단어 조차 그들과 소통할 수 없었다.

    그래도 제일 젊어 보이는 직원이 있는 가게를 찾아다녔다. 그들과는 조금이나마 영어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여곡절 끝에 방문한 한 가게에서 처음으로 '소통'이라는 것을 해봤다. 한류 열풍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한국에서 왔다고 한자를 써서 보여주니 태도가 달라진다. 덕분에 그들의 번역기로 내가 원하는 걸 이야기하고, 유심칩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제 한시름 덜었다.



    하...... 중국의 첫인상이 좋지 않다. 나를 너무 피곤하게 만든다. 너무 불편하고, 힘들고, 지치고, 괴로웠던 하루다.


    그래, 몇 달간 워낙 편하게 다녔으니 이럴 만도 하겠다. 모처럼만에 장애물들을 만났으니 버벅거리는 거겠지. 나도 잘 안다. 이 불편함은 곧 익숙해질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오늘따라 장애물들이 너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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