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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n 23. 2021

내 말이 통하는외국_Yanji, China

오, 한국어다!

    하루는 좀 쉬는 시간을 가졌다. 따지고 보면 언제가 쉬지 않는 날인지는 명확히 할 순 없지만, 어제는 베이징에서 하릴없이 하루를 보냈다. 만리장성을 가보는 게 일정 중 하나였으나, 나중에 또 와 볼 일이 있겠지 뭐. 그리고는 오늘, 중국에서의 마지막 도시 연길에 도착했다.


연길서역의 풍경 _ 눈이라니, 난 이제 죽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연변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진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조선족’의 본거지이니까 말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고, 또 이곳을 배경으로 한 범죄영화들도 대중들에게 많이 보였기 때문에, 남몰래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사실 이곳의 계획을 짧게 잡으려고 했는데, 이곳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는 차가 항상 있는 게 아니라 모객이 완료되어야 떠나는 식이라 하니, 차편을 확인하려면 하는 수 없이 날짜를 여유를 두고 오래 머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차편 확인 때문이 아니라 이곳이 재밌고 흥미로워서 더 머물고 싶다. 무섭고 걱정스러웠던 생각들을 전부 뒤엎을 만큼 연길이 재밌다. 간판들도 전부 한글로 쓰여있고, 버스에 타면 종종 한국어가 들린다. 물론 전부 다 알아들을 수는 없다. 꽤나 우리의 언어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심한 사투리 정도라고 표현하면 되려나, 집중해서 듣고, 말의 뉘앙스를 파악하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백산목욕레저회관, 복선 노래광장 그리고 켄터키_저긴 정말 KFC다.


    친한 형님과 우스개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하던 때라 통일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을 때였는데, 여행을 좋아하는 형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생각난다. ‘나는 내 말이 통하는 ‘외국’을 여행해 보고 싶은 마음이야. 그저 그 이유로 북한이 문을 좀 열었으면 좋겠어.’ 그 당시의 나도 그 말에 적극 동감하며, 나 또한 그런 특별한 경험을 꿈꿨다. 한글을, 한국어를 사용하는 나라, 혹은 지역은 많지 않으니 '내 말이 통하는 외국여행' 이는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었다.

    그 특별한 경험을 연길에서 하고 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는데, 고양이가 생선가게 지나치지 못하듯, ‘냉면’이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미끄러지듯 이끌려 들어갔다. 정말 '냉면', 한글로 '냉면'이라고 쓰여있는 게 재밌었다.


신이주냉면에서의 육쌈냉면


"어떻게 주문해야 하지?"


    영어로 주문을 해야 할까. 아니면 당당하게 한국어를 써볼까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선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였다. 그림을 가리키며 냉면과 고기를 주문했다. 주인 어르신도 아무런 대꾸 없이 주문을 받아가셨다. 주인 어르신은 말씀이 많지 않으셨지만, 잠시 뒤에 친구와 함께 들어온 아드님은 말이 많았다. 그는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들어왔는데, 둘이 한국어를 주고받고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무슨 말을 할까 귀 기울여 봤지만, 꽤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어서인지, 아쉽게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중국어인지 한국어인지 헷갈릴 정도로 말의 리듬도 달랐고, 나는 그저 몇 개의 단어들만 알아 들었을 뿐이다.

    단어들이 들릴 때마다 내심 반가웠다. 그들과 괜히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다. 차마 그 정도의 용기가 나진 않아서 계산을 할 때 한국어를 써보기로 결심했다. 괜히 영어도 중국어도 못하는 척하며 말이다.


"얼마예요?"

"53원이에요"


    오, 한국어다. 진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어다. 또박또박 발음된 한국어에 소름이 돋았다. 너무 반가워서 악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꾹 참았다. 티 내면 서로 당황스러울 테니까.




    자신감이 붙었나 보다. 냉면을 먹고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들른 카페에서 당당히 한국어로 주문했다. 괜스레 한 두 마디를 더 덧붙이기까지 했다. 스스로 꽤 어려운 한국어를 구사했다고 생각하는데, 대화가 통하는 게 정말 신기하다.


    여기 연길이 너무 재밌다. 더 머물고 싶다. 다시 기회가 된다면 연길만 다시 놀러 와서 백두산도 가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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