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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l 01. 2021

시베리아횡단 열차_사흘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의 셋째 날 밤의 기록

    내일이면 여행을 시작한 지 벌써 200일이 된다. 1년 정도를 계획하고 떠나 온 여행인데, 벌써 계획의 절반을 넘어선 셈이다. 글쎄, 1년 후 내가 기대하는 모습과 절반만큼은 가까워지고 있을까.


저들은 이 강추위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기차에서의 하루가 또 흘렀다. 희한하게도 기차에서 몇 밤을 잤는지 기억하지 못하다가, 일기를 쓰면서 그제야 몇 밤을 잤는지 명확히 따져 볼 수 있었다. 이제 두 번 잤을 뿐인데 벌써부터 날짜 개념, 시간 개념을 잊었다.

    내겐 평일 아침에 알람을 맞춰두고, 시간 맞춰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없다. 말 그대로 백수, 그리고 여행자이다. 이런 나에겐 평일과 주말이 전혀 상관없다. 종종 'O요일은 휴무' 같은 관광지의 안내문을 보기 전까진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매일이 주말 같아서 이미 날짜 개념을 상실한 지 오래지만 기차에 타고 있으니, 그 증후군이 더 심화되는 것 같다. 더군다나 기차 내에서 시차가 계속 변하고 있어서, 도대체 내가 몇 일, 몇 시에 존재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현재의 상황을 진부한 표현을 빌어 '이곳의 시간은 멈춰있다.'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딱 그런 느낌이 든다.



기차 문의 손잡이까지 얼어붙는 추위


    역시나 오늘도 특별한 행동을 한 건 없다. 오늘은 기차 끝에서 끝까지 산책한 것이 나름대로의 특별한 행동이다. 영화 <설국열차>처럼 머리칸부터 꼬리칸까지 관광하듯 다녀왔다. 내가 머무는 곳보다 높은 등급의 자리도 구경하고, 심지어 샤워 시설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물론 3등석 사람들은 샤워를 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3등석 자리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3등석 중에서는 나의 3등석이 제일 급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 열차칸과 나의 열차칸은 모양새가 비슷하지만 깔끔함의 정도는 달랐다. 오래된 열차칸이라 삐그덕거리며 노후된 부분도 많았고, 괜히 꿉꿉한 냄새도 났다. 그곳에서라면 로컬의 냄새를 물씬 맡아볼 수 있었겠다 싶은 아쉬움은 남지만, 현재의 쾌적함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내 자리에는 개인용 콘센트도 있으니까.

    이렇게 나의 쾌적함을 남들과 비교하다 보니 끝이 없다. 3등석 좌석 중에서 제일 높은 급인듯하여 만족스러움이 들었는데, 사실 1등석 2등석에 비할 것 못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1등석 2등석의 쾌적함이 너무나 좋았다. 그들의 자리가 부러웠다. 저 아늑함, 저 프라이빗함. 나의 자리에서는 절대로 챙길 수 없는 우아함이다. 티켓 값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다음번엔 무조건 1등석을 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1등석을 탄다고 한들, 나는 얼마 못 가서 이런저런 불편함에 몸부림쳤을 테다. 이처럼 인간은 간사한 존재니까. 몇 분 전에 만족감을 느꼈는데, 얼마 안 가 남들과 비교하며 더 많은 욕심을 부려 스스로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습이 이렇게나 간사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잠깐 내려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나도 그렇고, 같은 칸의 사람들도 그렇고 오늘따라 유독 우리 칸에 활기가 돈다. 글쎄, 나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야 이 공간에 존재하는 일이 편해졌다. 아마도 좁은 복도를 계속 오가며 그들과 몸을 부딪힌 일들이 쌓이고, 오고 가면서 그들과 인사로 주고받는 한마디 한마디가 쌓여서 그런가 보다. 전 보다 대화도 많이 늘었고, 그렇게 조금은 편하게 그들을 바라보니까 그들의 모습이 새삼스레 반갑게 여겨졌다.

    이런 탓에 오늘따라 유독 우리 열차에 활기가 돈다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따뜻하게 느껴지니 시베리아를 달리고 있는 이 열차도 따사로워졌다고 생각한 것이고, 혹시나 그들이 내 이름을 반갑게 부르지 않을까 귀 기울여 듣다 보니, 그들의 목소리로 열차 내에 활기가 가득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어제까지만 해도 '요즘의 나는 새로운 관계를 굳이 만드려 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이제 잘 모르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저 생각이 깨지고 붙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그저 그들의 대화에 껴들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나는 굳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아.', '그런 건 다 귀찮아.'로 일축한 건 아닐까.

    아무튼 먼저 말 붙이기 껄끄러웠던 한국분들 하고도 한 두 마디 더 쌓았다. 아마 내일은 또 조금 더 수월한 대화를 나누며, 더 따사로운 7 호칸이 될 테다.


활기가 지나고 적막이 가득한 밤이 찾아왔다

    아직까지 씻지 못하고 있다. 아, 오늘 샤워실이 있음을 보고 왔으니까 '아직까지 씻지 않고 있다.'는 말이 맞겠다. 물론 이도 닦고 세수도 하고, 찝찝함을 덜어 보고자 속옷은 갈아입는다. 하지만 샤워는 일절 하지 않는다. 샤워실에 돈을 쓸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머리가 이제 슬슬 간지럽고, 입고 있는 옷도 찝찝하지만 쓸데없는 소비를 참아 내야 한다. 여행을 시작하며 못 씻는 상황, 못 갈아입는 상황, 못 먹는 상황은 충분히 예상했다. 그리고 예상의 결과로 '1주일 정도는 괜찮다.'라고 스스로 답을 내렸으니, 며칠은 더 참아보자.


    그런데, 정말 미친 듯이 씻고 싶긴 하다. 샴푸 12번 짜서 거품을 잔뜩 낸 다음에 두피를 벅벅 긁고 싶다.


내일을 향해 또 달리는 기차


    모처럼 속 시끄러운 밤이다. 괜히 생각이 또 많아진다.


    괜스레 인풋과 아웃풋에 대한 이야기를 또 떠올려본다. 내게 인풋은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 멋진 인풋을 여전히 내부적으로 이상하게 처리하는 게 문제다. 좋은 인풋이 들어가면, 좋은 아웃풋이 나와야 하는데, 자꾸만 스스로를 갉아먹을만한 자책성의 생각들이 꿈틀대는 것이다. 그렇게 자꾸만 힘들다, 짜증 난다, 답답하다 같은 부정적인 마음의 아웃풋이 나와 버린다.

    어떻게 보면 입력값은 객관적인 사실이니 내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출력 또한 이미 나온 결괏값이기에 내가 수정할 수 없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그저 입력값을 올바르게, 내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처리하는 과정만을 컨트롤할 수 있는데, 생각이 너무 많아 자꾸 왜곡된 출력 값이 나오는 기분이다.


    여전히 생각이 많은 탓이다.

    버리기로 다짐하며 열차에 올랐으니, 부디 조금 더, 정말 조금만 더 버리는 스스로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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