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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l 12. 2021

유럽의시작_Kyiv,Ukraine

절반의 절반은 절반

키예프, 페체르크 수도원의 종탑


    한국과의 시차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시작으로 이제부터 진짜 유럽이 펼쳐진다.(러시아를 유럽으로 껴주기엔 너무 크니까) 이전까진 어디서든 비행기를 타면 20만 원에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이 가깝게 느껴졌는데, 이젠 아니다. 집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 난다.


The Ukrainian State Museum of the Great Patriotic War의 여신상


    우크라이나에 들어오는 길에 버스요금을 두 번이나 내고, 지도가 없어서 숙소를 찾기까지 헤매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렇지만 결국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무사히 안착했다. 진짜 유럽이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곳은 아직까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유럽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다. 도시의 분위기가 음산하고 우중충하다. 아마 아직도 소련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배급을 위해 같은 규격으로 만든 집들, 그리고 버려진 채 방치된 건물들이 주는 분위기가 러시아의 느낌과 사뭇 비슷하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 대신에 사람들이 정다워 좋다. 유럽의 동남아시아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대개 유럽이라고 하면 콧대 높은 서양사람들을 떠올리기 마련일 텐데, (실제로 러시아에선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고) 여기는 모두가 친절하다. 또한 영어가 잘 통해 좋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겠냐만은 영어로 소통하는 데에 전혀 힘든 게 없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는 레벨이 조금 낮은, 여행하기 쉬운 곳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행이다. 유럽의 첫 시작이 우크라이나여서 참 다행이다. 지명은 익숙한 곳이 많더라도, 아무래도 모르는 곳들을 앞으로 많이 가보게 될 텐데, 소통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다시 여행에 자신감이 조금 붙었기 때문이다. 사실 베트남 이후로는 중국, 러시아 두 나라뿐이었는데, 두 곳에서 전부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꽤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행에 진입장벽을 좀 높이 느끼고 소극적으로 다닌 게 된 것 같은데, 이렇게 자신감이 회복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 기쁘다. 덕분에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여기저기를 발발 거리며 쏘다녔다. 물론 그만큼 다리가 너무 아프긴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크리스마스 마켓
드네프르 강의 풍경


    근래에 '이동'만을 반복하고 있는 기분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마찬가지일 테지만, 마치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타던 때와 비슷한 것 같다. 그 당시엔 하루 머물고 하루 이동하고, 또 하루 머물고 또 하루 이동하는 날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반복될수록 불안한 마음이 커졌었다.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이동만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동'이라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을 보내는 것 같아 불안하다. 뭔갈 해야 얻어가는 것이 있을 것 같은데, 계속해서 시간을 버리고 있는 기분이다. 분명 이동 또한 여행의 한 과정임을 알고 있지만, 이 불안한 마음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페체르크 수도원
St. Michael's Golden-Domed Monastery

    그러나 지도상으로도, 기간적으로도, 벌써 절반이나 했다. 많이 양보해서 총 여행한 시간 중 버린 시간이 절반이 된다 한들, 여행의 시간은 절반이나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절반은 꽤 많은 시간이다. 그래, 나는 분명 이 시간 동안 성장했다. 아니 이제는 성장했다고 믿는다. 이 이동의 과정이, 그리고 이 외로움 또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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