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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l 13. 2021

개미와 베짱이_Odessa, Ukraine

오데사에서의 날들

    기차를 14시간씩이나 탔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이후로, 이제 이 정도 이동은 우습나 보다. 그렇게 우크라이나의 다른 도시 오데사에 도착했다.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 조합의 지하철, 이 지하철로 키예프 기차역까지 간다.
키예프 기차역과, 나를 오데사까지 실어 날라줄 야간 열차


    키예프에서부터 오데사까지 나를 옮겨준 건 야간열차였다. 숙박과 이동을 한 번에 해결하면,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야간열차를 탄 것이다. 기차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똑같은 모습으로 자면서 올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정말 예전에 '소련'으로 묶여 있었던 두 나라가 아니랄까 봐, 시베리아 횡단 열차와 구조가 똑같아서 나로선 이용하기에 편리했다. 그거 한 번 타봤다고 익숙하게 자리를 펼치는 내 자신이 우스웠다. 허나 오데사에 도착했던 건, 새벽 5시였다. 보통은 체크인 시간까지 숙소에다가 짐을 맡겨 놓고 놀러 나가곤 했는데, 시간이 너무 일찍이라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그냥 해가 떠오를 때까지 기차역 근처의 맥도날드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기차 내부의 모습


    현지인들이 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괜히 느낌이 이상해질 때가 있다. 이걸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 처지를 생각해보게 된다랄까? 그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대체로 대중교통이라 함은 바쁜 현대사회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바쁘디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바쁘게 하루를 살아내는, 일상에 지쳐 보이는 그들은 동화 <개미와 베짱이> 속 개미 같고 나는 베짱이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내려야 할 곳이 정해진 사람들이다. 해야 할 일이 있고, 보다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에 반해 나는 목적지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어서 안정된 생활이랄 게 없는 사람이고, 글쎄 뭐가 더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동화 <개미와 베짱이>중 행복한 쪽은 어느 쪽일까?


한밤중의 오데사 역


I LOVE ODESSA!!


    근래엔 참 많이 걸으며 여행을 하는 것 같다. 오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씻고 걷고 씻고 자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중간중간 유명 관광지에 들르거나, 식사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하루 종일 걷기만 하는 게 하루 종일 하는 일의 전부였다. 하루 평균 약 20km씩을 걷고 돌아오는 것 같은데, 그렇게 오데사를 산책했다.


흑해

    흑해 해변에 갔을 땐 타이밍이 참 좋았다. 흑해라고 하면 검은 바다를 떠올리게 되는데, 정말 어둠의 바다가 아니랄까 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물안개가 짙게 핀 모습이 아름다웠다.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사방팔방 셔터를 눌러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안개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이 그 분위기를 더 했다. 모처럼 이 순간을 꼭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해를 붉게 적시는 노을


    도시의 중앙에 위치해있는 재래시장도 재밌었다. 나는 여행을 다니며 시장을 둘러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각각의 문화권마다 한 군데는 꼭 들러보려 한다. 그런데 마침 오데사에도 큰 재래시장이 있었고, 재래시장 구경을 했던 시간이 가물가물 하길래 가보게 되었다. 그렇게 오데사의 시장을 둘러보게 됐는데, 왜 사람들이 시장을 좋아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첫 번째로는 우선 눈에 들어오는 대로 오데사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재미가 있었고, 두 번째는 시장 구경만으로 활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고팔고, 또 흥정하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 활기찼다. 카메라를 매고 시장을 활보하는데, 자기도 한 컷 찍어 달라는 살가운 아주머니, 그리고 맛보기 캔디를 한 줌 쥐어주시는 아저씨까지 그분들 덕에 웃음이 참 많이 나왔다. 그렇게 살아 숨 쉬는 공간에서 많은 에너지를 얻어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오데사 재래시장의 풍경


    이번에도 몰도바로 넘어가는 야간열차를 예약했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 기차라 그런지,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는 열차가 없었다. 덕분에 예상치 않게 오데사에 하루 더 있게 되었는데, 일정에 맞추느라 오데사를 밤늦게까지 빠지는 곳 없게 방방곡곡 돌아다닌 터라, 가볼 만한 데가 마땅히 없었다. 오데사의 마지막 날은 맥도날드와 함께 했다. 생일을 핑계로 햄버거 두 개를 먹었다. 빅맥 세트에 치즈버거 추가. 내가 딱 좋아하는 조합이다.


안개가 짙게 피어오르는 오데사의 풍경


    요 근래 패스트푸드를 너무 많은 것 같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찾기 쉽고 주문하기 편해서가 아닐까 싶다. 지난번 러시아 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대부분의 식당들이 건물 안에 꽁꽁 숨어있어서, 무엇을 파는 곳인지 겉에서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찾기 쉽고 주문이 쉬운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했나 보다.

    그렇게 하루 종일 맥도날드에 앉아 있다가 숙소로 돌아오는데, 문득 꽤 괜찮은 뷔페식당을 발견해 들어갔다. 이 문화권의 일반적인 식당의 모습이 이런 식인지는 잘 모르겠으나(허구한 날 맥도날드만 가니까) 지난번 우수리스크에서도 이런 식당에 가본 적 있었다. 음식을 담아가면 계산대에서 얼마라고 계산을 해주는데, 문제는 내가 담는 게 얼만큼인지, 그리고 얼만큼에 가격은 얼마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심각한 단점을 가지고 있는 곳이긴 했지만, 오랜만에 먹는 볶음밥은 꿀맛이었다. 생일맞이 식사로 딱 좋다.

    조금 일찌감치 이런 식당을 발견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나는 이제 또 떠난다. 우크라이나에서 여행에 대한 자신감도 회복하고, 또 재래시장에서 재밌는 에너지도 많이 얻었으니 다시 또 기운 내어 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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