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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l 14. 2021

웰컴 투_Chişinău, Moldova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체크아웃 시간부터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특별한 식사를 준비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애플 워치가 축하해주는 나의 생일


    호스텔에 딸린 주방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볼 생각이다. 이러려고 아껴둔 것은 아닌데, 마침 내게 뜨거운 물만 부어서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미역국과 볶음 김치가 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탈 때 같은 칸에 탔던 모녀가 준 것이 아직까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밥만 있으면 나름대로 괜찮은 생일상이 될 수 있겠다. 우선 체크아웃 시간은 지켜야 하니까, 방의 짐을 정리해 주방으로 옮기고, 숙소 앞에 있는 마트로 향한다.

    해외를 다니며 햇반은 종종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 마트에 햇반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햇반은 없고 이상한 인스턴트 쌀만 있다. 이상하다고 해서 정말 모양새가 이상한 쌀은 아니고, 포장지에 쓰인 조리법이 조금 희한하다. 구멍이 뚫린 봉투에 쌀이 포장되어 있었는데, 이대로 끓는 물에 넣고 기다리면 밥이 된다고 쓰여있다. '너무 질 것 같은데...?' 미심쩍긴 하지만, 마땅히 선택권도 없으니 그 방법으로 밥을 지어 간단한 생일상을 만든다. 밥은 역시나 굉장히 질다. 하지만 나름대로 밥의 모양새는 유지하고 있다. 잡채나 고기반찬 같은 다른 곁들일만한 음식은 준비하지 못했지만, 모처럼만에 먹는 한국음식이라 그런지, 아니면 생일상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꽤 먹어줄 만하다.


아... 되긴 되네

    생각해보니 공용 부엌은 처음 써본다. 모스크바 때부터 머물렀던 숙소에는 전부 공용 부엌이 있었는데, 아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돈을 벌러 오는 중앙아시아의 사람들을 위한 공간처럼 보인다. 그들은 호스텔에 오래 머무니까 요리를 해 먹는 게 금전적으로 이득이니 이런 공용 부엌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짧은 일정을 가지고 있고, 요리에 그다지 소질도 없는 내게는 그저 들고 다니는 식빵과 딸기잼을 먹는 공간일 뿐이다. 그런 내가 생일이라고 부엌에서 불을 쓰고 있는 모습이 괜스레 우습다.


    내겐 생일이라는 게 좀 특별한가 보다. 남들에겐 '생일이 뭐 대수야?'라고 이야기하며 애써 쿨한 척 하지만, 내 속에선 꽤나 의미 깊은 날인가 보다.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인만큼 오늘의 생일이 이 여행의 터닝포인트가 되기를 바란다.


참으로 외롭디 외로워 보이는 생일상


    사실 혼자 하는 여행의 외로움은 생각보다 크다. 무슨 덕을 보겠다고 이 짓거리를 시작했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들기도 한다. 특히나 동남아 일주가 끝난 이후부터 이런 생각들이 꽤 많이 들었는데, 이건 마치 방황기를 겪는 청소년 같다. 내 여행이 이렇게나 힘들다는 걸 알아주고, '고생 많다. 잘했다.'라고 이야기해주는 내 편이 없는 것 같아서 심술이 나곤 했다. 그렇게 그 기간 동안 써낸 일기가, 참 다시 읽어주기 어려울 정도로 우울함의 끝을 달린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을 터닝포인트로 삼아 애같이 징징거리는 모습을 조금 벗어내고 싶다. 물론 그렇다고 순식간에 외로움이 가시고, 심술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좀 받아들이련다. 새로운 흥밋거리는 새로운 흥밋거리대로 그리고 외로움은 외로움대로. 기뻐하는 한성호도 한성호고, 외로워하는 한성호도 한성호니까 말이다. 전처럼 ‘왜 병신 같이 외로워해’, ‘왜 쪼다처럼 제대로 즐기지 못해’하며 자책하지 않으련다. 새로운 걸 보고, 듣고 느끼며 얻는 배움도 있고, ‘혼자’의 시간을 견디고 극복하며 얻는 배움도 있을 테니까.




키시너우로 향하는 기차
키시너우의 첫인상


    여전히 나는 움직인다. 열차를 타고 몰도바의 키시너우로 왔다. 이번에도 밤 기차를 타고 오긴 했지만, 오데사부터 키시너우까지는 거리가 가까웠다. 지난번처럼 자면서 오는 일은 없었다. 간단한 생일상 이후로 숙소에 남아 시간을 보내다가 열차를 탔다. 생각해보니 기차로 국경을 넘는 일도 처음이다. 열차에 앉아 출국심사를 하고, 기차역에 딸린 작은 부스에서 입국심사를 하는 게 꽤 생소하다.

    키시너우의 첫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할 이야기가 없다.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곧장 숙소로 왔기 때문이다. 숙소의 호스트 할아버지가 차가운 말씨로 뱉은 "Welcome to Moldova"라는 말이 곱씹어 보니 괜스레 따뜻할 뿐이다.


    Welcome to Moldova!

    Welcome to the Turning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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