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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l 15. 2021

몰디브아니고_Chișinău, Moldova

노란색봉다리의귤


    여행을 하며 SNS를 통해 하루의 일기를 공개하고, 친구들과 근황을 공유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 친구들은 나의 근황을 물을 때마다 항상 '그래서 너 지금은 어디야?'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하는데, 자, 이번엔 내가 먼저 나의 근황을 알린다. 나는 지금 몰도바에 있다. 몰디브 아니고 몰도바다.


Valea Morilor Park 공원


    나도 몰디브만 들어봤지 몰도바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무비자로 유럽에 머물 수 있는 날들을 계산하면서, 비쉥겐국이 많은 동유럽을 돌아보는 방법으로 루트를 짜다 보니 이곳 몰도바를 알게 된 것이다.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좀 해보니, 몰도바는 EU에 가입하고 싶어 하지만, 유럽이라 부르기엔 애매한 곳에 위치해있고,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아서 계속해서 가입을 거절당하고 있는 나라라고 한다. 내가 잘 모르는 탓이기야 하겠지만, 유럽에 이런 약소국이 존재한다는 게 괜스레 생소하고, 신기하다.

또한 몰도바 내에는 본인들의 독립을 주장하는 미승인 국가 '트란스타니아'라는 나라도 존재한다. 이들은 자칭 독립국가임을 자청하기에, 출입국심사가 존재하지만, 몰도바는 이들은 인정하지 않으니 출입국심사가 따로 없다고 한다. 나라를 오고 가며 한쪽 나라만의 도장이 여권에 찍힌다는 게 괜히 특별해 보였다. 시간이 많았다면 '트란스타니아'도 가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작은 나라라고 짧은 일정을 계획한 게 아쉽다.


키시너우의 거리 풍경


    우크라이나도, 몰도바도 참 좋다. 유럽이긴 하지만 뭔가 동남아스러워서 좋다. 내가 너무 동남아에 오래 있었어서 익숙해지고, 그래서 동남아스러운 것들을 좋아하게 된 걸까? 아무튼, 내가 이야기하는 동남아스러움은, 좀 더 여행의 장벽이 낮아 여행하기 편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위 얘기하는 콧대 높은 나라들에 있다 보면, 설령 실제로 그들이 그러지 않았다고 한들, 괜스레 그들의 눈빛이 따갑고, 나도 모르게 위축되는 일이 꽤 많다. 러시아에서도 그랬고, 중국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이어 몰도바까지, 이곳에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따갑지 않고 따사롭다.

    ‘가난한 나라여서 그래’라는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 이런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들은 맞다. 어쩌면 내가 국민 소득이 상위에 랭크되어있는 한국의 국민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내겐 이런 나라들이 되려 여행하기 편한 건 사실이다. 일례로 길거리를 걷다 보면 마트와 백화점이 아니라 재래시장들이 많고, 마트와 백화점 보단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일이 즐거우니 말이다. 이곳 사람들의 일상이 귀엽고,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굳이 유명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길거리에 구경거리가 넘쳐나는 셈이다. 조금 더 시간이 많았다면, 날씨가 좋았다면, 테라스가 있는 카페나 공원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만 실컷 해도 참 좋을 것 같다.


키시너우의 거리


    그래서인가, 잘하지 않는 짓을 했다. 사실 내 여행의 지출은 숙소, 교통비, 하루 두 끼의 식사 위한 것뿐이다. 워낙 식탐이 없는지라 간식은 생각조차 나질 않고, 기념품은 짐을 늘릴 수 없으니 가방에 붙일 각국의 국기 패치를 제외하곤 사질 않는다. 그런 내가 오늘 재래시장에서 귤 한 봉다리를 샀다. 누군가는 귤 하나 산 게 뭐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배고프지 않은데 먹을 걸 위해 돈을 쓴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곳이 재밌긴 재밌나 보다. 아마 재래시장의 정겨움과 반가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따사로움에 목말랐나 보다. 물론, 내게 귤을 판 아저씨의 솜씨 좋은 흥정 때문이었겠지만.


사실 핫도그도 하나 사먹었다. / 노란색 봉다리 속 귤색 귤


    불필요한 지출이었지만, 노란 봉다리에 귤을 들고 다니는 내 모습이 사뭇 맘에 든다. 마치 현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나를 스쳐가는 몰도바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기분이다. 그리고 귤이 오늘따라 엄청 맛있다. 실제로 내가 비타민이 필요했나, 퍼즐 맞추듯 비타민이 필요한 자리에 탁탁 맞아 들어가는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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