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성호 Jul 19. 2021

발칸의 파리_Bucharest, Romania

앤티크함의 시작, 오래된 기차, 여행 습관에 관하여

    생각해보니 시베리아 횡단 열차 이후로 기차 이동이 잦다. 이번에도 기차를 타고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넘어왔다. 버스를 타기엔 새벽 2시에 도착해야 하는 스케줄이라서, 아침 6시에 도착할 수 있는 기차를 타기로 정한 것이다. 이번 열차는 우. 습. 게. 도, 13시간만 타면 됐다.


부쿠레슈티행 열차를 탈 수 있는 키시너우 역


    기차는 굉장히 오래된 느낌이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진 모르겠지만, 철로 위를 달리는 중세시대 마차 같다랄까, 대부분의 것들이 나무로 인테리어 되어있는 게 감성을 자극했다. 좌석 또한 방처럼 되어있는 곳이어서 나무 문이 달려 있었는데, 이는 마치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 속, 호그와트행 열차를 타고 있는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또한 몰도바와 루마니아의 철로 모양이 다르게 생겼는지, 국경지대에서 열차에 탑승한 채로 출입국 심사를 하는 것과 더불어 바퀴를 갈아 끼는 모습도 신선하고 재밌었다.

    운 좋게도 같은 칸엔 미국인 친구가 탔다. 내 영어실력이 완벽하진 않지만, 지루 할 틈 없이 그녀와 수다를 떨며 이동할 수 있었다. 그녀가 가져온 하우스 와인은 덤이었다. 본인 친구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직접 준비한 것이라 했는데, 우리는 수다를 떨며 그 와인을 전부 마셔버렸다. 와인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이만한 즐거움 없다. 그녀 덕분에 기차에서 따분히 영화를 볼 일도 없었고, 부쿠레슈티에 도착해서도 그녀의 비행기 시간까지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열차의 내부 모습
바퀴를 갈아끼고 있는 나의 열차




    나만의 여행 방식이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여행 습관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나는 구글맵에 내가 현재 위치해 있는 도시를 검색해서 위치를 잡고 ‘attractions’이라고 검색한다. 그러면 각종 관광지들이 검색되는데, 그중 가보고 싶은 곳을 미리 표시해 둔다. 그리곤 숙소를 나와, 구글맵에 표시한 곳들을 찾아다니며 종일 걸어 다닌다. 대신 지도가 알려주는 최단 거리로 이동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타지도 않고, 대충 방향만 생각하고 걸으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산책이라고 봐도 좋겠다. 대신 장소가 공원 산책로가 아닌, 도심의 인도인 셈이다. 그렇게 목적지를 향해서 걸으며 도시를 산책하는 것이다. 사람 구경도 하고, 잠깐 쉬고 싶으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그러면 신기하게도 ‘여기 괜찮다.’, ‘여기 신기하다.’ 같은 생각이 드는 장소를 만난다. 어찌 보면 낚시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마냥 길을 걷는 것이 기다리는 일이고, 괜찮은 곳들을 만나는 것은 물고기를 낚는 순간이다. 낚시에도 분명 기술이 있겠지만, 나는 이런 방식으로 명소들을 낚는다. 그렇게 명소들을 낚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가 이전에 표시해뒀던 곳일 때가 많다. 그러면 그게 그렇게나 뿌듯하다. 속으로 ‘역시 나는 보는 눈이 있어’하며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걷다가 돌아온다.


Stavropoleos Monastery Church
C.E.C 궁전 / 루마니아 아테니움 / 부쿠레슈티 개선문


    하루에 평균적으로 30km씩 걷는다. 벌써부터 순례자 길 연습을 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가본 곳들이 쌓이고, 찍은 사진들이 늘어나는 뿌듯함으로 하루의 피곤함을 씻는다. 이것이 나의 여행 습관이다.

그 때문에 혼잣말이 많이 늘었다. 혼자서 도시를 산책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혼잣말이 매우 즐겁다. 이렇게 얘기하면 스스로 너무 초라해 보이고 외로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여행에서 유일한 친구는 나뿐이니까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여긴 외국이라 내가 중얼거린다고 해서 그 내용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으니, 나의 친구, '나'와 아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스스로 계속 질문하고 답하며 내일의 계획, 한 달의 계획, 여행 후의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무엇보다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한다. 부끄러운 표현을 빌리자면 ‘한성호’라는 좋은 친구를 얻었다. 물론 이 친구가 맘에 안 드는 경우는 매우 많지만 말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인민궁전> 북한의 주석궁을 본떠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펜타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행정용 건물)


    그렇게 나의 습관대로 부쿠레슈티에서 가보고 싶은 곳들을 둘러봤다. 무엇보다 건물들의 앤티크함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발칸의 파리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아, 걷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부쿠레슈티의 첫 시작이었던 오래된 기차의 느낌부터, 부쿠레슈티가 가진 고풍스러운 느낌까지, 나는 이곳이 너무나도 맘에 든다. 요 근래 거쳐온 우크라이나도 몰도바도 다 같은 유럽이지만, 사실 소련의 색깔이 짙었다. 사람들이 주는 따뜻함과는 별개로 건축물 자체가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마니아에서는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럽의 앤티크함이 많이 묻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유럽의 로맨틱함이라고 해야 할까. 부쿠레슈티는 사실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미 도시화가 많이 이루어졌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도 이 정돈데, 앞으로 방문할 소도시들은 어떠려나.


부쿠레슈티의 거리


    차가운 새벽의 하늘이었지만, 공기는 따뜻했다. 이제야 내가 머릿속에 그리는 유럽을 마주한 기분이다. 파릇파릇한 가로수들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겨울이라 아쉽다.


    아, 여름이었으면 또 너무 덥다고 칭얼댔으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몰디브아니고_Chișinău, Moldov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