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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l 22. 2021

밖은 위험해_Timisoara, Romania

집돌이가 되어버린 이유

    시간이 멈춘 도시, 브라쇼브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티미쇼아라로 이동했다. 브라소브부터 티미쇼아라까지는 직행열차가 없기에, '아라드'라는 도시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브라소브부터 아라드까지 가는 열차가 연착이 되었다. 아라드부터 티미쇼아라까지 가는 다음 열차의 시간은 다가오는데, 나는 아직 아라드를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10분 남짓 늦어져 '돈 날렸네', '하는 수 없지 뭐', 다음 열차 타야지'하며 티켓 창구로 갔는데, 마침 티미쇼아라에 가는 열차 또한 연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래 내가 가야 하는 승강장으로 가보니 아직 열차는 출발하기 전이었고, 무사히 티미쇼아라로 올 수 있었다.


티미쇼아라 올드쿼터 광장 주변의 건물들


    티미쇼아라 또한 브라쇼브처럼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스타일의 보도 블록이 있다. 아 보도‘블록’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손수 깎은 듯 각자 모양이 다른 돌들을 이어 붙여 만든 길, 그러니까 흔히들 중세시대 거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런 보도블록을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나는 이 바닥만 보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을 향하고 있다. 브라쇼브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이번에 티미쇼아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턱대고 캐리어를 끌었다간 바퀴가 다 망가지고 마는 그런 보도 블록, 그런 길이 잔뜩 깔려있는 티미쇼아라의 거리를 걸으며 산책했다.

    티미쇼아라는 딱 보기에도 브라소브보다 규모가 더 컸다. 특히나 올드 쿼터의 규모가 달랐는데, 브라쇼브는 뭐랄까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었다면, 티미쇼아라는 보다 큼직 큼직한 아름다움이었다. 거리들도 브라소브 보다 널찍하고 건물들도 조금 더 높은듯하다. 브라소브의 올드 쿼터가 아기자기한 동화 속 세상이라면, 티미쇼아라의 올드 쿼터는 정말 사람들이 살았을 법한 느낌이다. 브라소브엔 요정들이 살 것 같고, 티미쇼아라에는 진짜 옛날 사람들이 살았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되려나.



티미쇼아라의 풍경
티미쇼아라 올드쿼터 광장 주변의 건물들


    뭐 얼마나 북쪽으로 이동했다고 전과는 다르게 쉽게 추위를 느끼고 있다. 밖에 눈이 떨어지는 일도 잦고, 그래서 그런지 밖으로 나가는 일을 꺼리고 있다. 이곳 티미쇼아라에서 할 일로 생각해둔 것이 있긴 있었다. 이곳 티미쇼아라가 루마니아 민주화의 시발점이 되었던 도시라길래 이와 관련한 박물관에 가보는 것을 나름 일정다운 일정으로 생각해 뒀는데, 이마저도 내가 티미쇼아라에 머무는 기간 동안은 휴관이란다. 나는 그렇게 반 강제로 숙소에만 갇혀 있었다.

    사실 갇혀 있었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나는 일부러 숙소에만 있었다. 숙소가 너무 맘에 들었던 덕분이다. 일부러 비싼 숙소를 찾은 것도 아닌데, 운이 좋게도 아주 맘에 드는 예쁜 공간에서 머물고 있다.


#티미쇼아라


    처음엔 숙소의 위치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호스텔이라길래, 당연히 간판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주소지에 도착을 했음에도, 여기가 호스텔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으며, 심지어 입구를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긴 분명 숙소가 알려준 주소, 그 건물인데, 내 눈앞에는 100년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엄청 오래된 건물만이 보였다. 그렇게 건물 주변을 계속 빙빙 돌다가 건물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을 발견해서 따라가 보니 그곳에 현관이 있었다. 그제야 나는 자그맣게 숙소의 이름이 쓰인 차임벨을 만나보았다.

    차임벨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리고, 또 누르고 또 한참을 기다리기를 반복하다가, 또 마침 건물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있어서 문이 닫혀 다시 잠기기 직전에 뛰어 들어왔다. 이제 내부에서 숙소를 찾기만 하면 되는데, 이번에는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이 나를 반겼다. 뿐만 아니라 수동으로 문을 여닫고, 수동으로 조작해 탈 수 있는 오래된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나무계단이건, 엘리베이터 건 내 무게를 이기지 못할 것처럼 아주 오래돼 보였다.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들이 이렇게 오래된 아파트들에 살던데, 딱 그런 느낌이다. 유럽의 오래된 아파트들은 대부분 이런 가보다. 사람들이 유럽에서 100년 된 건물은 신축으로 친다고 농담을 하던데, 여긴 신축이라고 부르긴 힘들 정도긴 하다. 아무튼, 내 맘에 쏙 드는 숙소는 이런 아파트 모퉁이의 한 호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의 숙소가 있는 건물


    처음엔 외관이 너무 낡아서 내심 걱정했는데, 호스텔의 내부는 깔끔하게 리모델링하여, 아주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렇게 세련되게 만들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신식과, 구식의 조화가 완벽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현재, '뉴트로'라는 단어가 트렌드인데, 그 단어에 딱 걸맞은 곳이다. 이곳이 만약 한국에 있는 어떤 에어비앤비였다면 이곳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1년 치 예약이 삽시간에 팔리는 일은 거뜬할 것처럼 보였다. 2층 침대가 들어있는 방도 널찍하고, 화장실도 건식으로, 아늑하니 좋았다. 천고가 높은 것 또한 공간을 멋지게 보이는 데에 한몫했다. 넓은 다이닝 룸에 있는 LP판과 턴테이블, 편안한 소파, 그리고 건너편 정교회 건물과 공원까지 시원하게 보이는 넓은 창문까지, 정말 완벽한 숙소였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나 예쁜 숙소를 처음 본다. 영화 속 주인공의 집에 놀러 온 느낌이 난다. 훗날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이런 느낌을 연출할 수 있기를.


이럴줄 알았으면 사진 좀 더 찍어 올 걸


    심지어 이렇게 멋진 숙소에 조식이 있었다. 이 또한 숙소가 맘에 드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것도 조식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 아주 맘에 든다. 배가 고프면 언제고 다이닝룸으로 나와 알아서 차려 먹으면 됐다. 다양한 종류의 잼과 빵이 늘 있었고, 시리얼도 여러 종류로 다양하게 있었다.(심지어 우유와 두유 전부 비치되어 골라 먹을 수 있었다.) 뭐 베이컨을 구워 준다던가, 스크램블 에그나 오믈렛이 나오는 뷔페식 조식은 아니지만, 있는 범위 내에서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니 이곳이 천국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조식으로 이용하라고 둔 것일 테지만, 저녁 또한 여기서 해결하고 있다. 빵만 사서 오면 쨈과 우유는 있으니까.(이러면 안 되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걸 어떡해


    나는 지금 이 글을 다 쓰면 다이닝 룸에 갈 거다. 거기서 빵 하나를 구워 먹고, 맘에 드는 LP판을 골라 턴테이블에 올려 틀고, 다이닝룸의 편안한 소파에 가만히 앉아 책을 읽을 거다. 아, 벌써부터 설렌다. 이제 그만 써야지



    살이 엄청 많이 빠져 걱정이다.(그러고 보니 체중계가 있는 숙소는 또 처음이네) 일부러 살을 빼려고 굶고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배고픔을 느낄 때만 먹었을 뿐인데, 이렇게나 살이 많이 빠졌다. 분명 처음엔 80kg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63kg 밖에 나가질 않는다. 말도 안 돼.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는 게 신기하다. 모처럼 몸무게를 재고 사태를 파악했다. 앞으로는 잘 먹고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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