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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l 23. 2021

비지떡_Beograd, Serbia

잃은 것들과 얻은 것들

    루마니아에서 세르비아로 국경을 넘었다.


    벌써 9번째 국경 통과다. 국경을 넘는 일이 처음에는 그렇게나 신기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자연스럽게 여권을 준비하고, 자연스럽게 관광하러 왔다고 답할 뿐, 생소한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 출입국의 매너리즘이랄까. 단지 여권에 하나 둘 출입국 도장 컬렉션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만이 만족스럽다. 아직까지는 비쉥겐 국가들이라 여권에 출입국 도장을 찍어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루마니아 - 세르비아의 폐쇄된 국경검문소


    사실 유무는 모르겠으나, 루마니아와 세르비아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더라. 서로 사이가 좋을 땐 오고 가는 기차가 있었지만 지금은 도보나 차로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차편을 알아보는데, 티미쇼아라(루마니아)부터 베오그라드(세르비아)까지 이동하는 차편의 값이 무려 60유로였다. 이렇게나 비싼 교통편을 타 본 경험이 없는데 말이다. 나는 결국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검증되지 않은 이상한 사이트를 통해 15유로짜리 차편을 찾아냈다. 무려 4배나 저렴한 가격이었다. 예약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역시나 비지떡이었다. 이 차편 하나 때문에 뒷 일정에 전부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나는 분명 오후 2시에 차를 타기로 했다. 픽업을 원하는 장소를 적으라길래 적었고, 원하는 시간대도 골랐다. 유심이 없어서 전화를 받을 수도 없고 걸 수도 없으니, 차를 놓치는, 혹시나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몰라 오후 1시부터 약속 장소에서 차를 기다렸는데, 2시가 되어도, 2시 10분이 되어도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한국 유심을 꼽고 연락을 기다려 보았지만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아 국제전화 요금이 비싸더라도 이건 전화해봐야 한다.'

    하지만 전화로 확인을 해봐도, '배달 출발했어요'처럼 '기사님 출발하셨어요'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베오그라드의 풍경, 잘은 모르지만 유고슬라비아스럽다.


    추운 겨울에 도로 한복판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중, 마침내 곧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한국인’으로부터 말이다. 같이 타는 승객 중에 한국인이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기다리니, 여행사 로고를 대문짝만 하게 새긴 차가 내 앞에 섰다. 탑승해서 가벼이 예약정보와 목적지를 확인하고, 이 상황에 대해 함께 타고 있는 한국인에게 물어보니, 본인들도 의아하다고 한다. 본인들은 1시 30분에 예약을 했는데, 2시 40분쯤 차를 탔다고 한다. 예상컨대, 일정이 딜레이 되었는데, 기사님이 영어도 루마니아어도 전혀 하지 못하는 세르비아인이라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가 첫 번째로 탄 손님들에게 앞으로 탈 손님들의 안내를 부탁한 게 아닐까? 마침 한국인이 있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조금만 더 기다리다가 하루 더 묵으며 비싼 차편을 예약하려 했었는데 말이다.


베오그라드 요새에서 바라본 베오그라드 시내 풍경


    이제 문제는 그 이후의 스케줄이었던 '숙소 체크인'이었다. 이 또한 내가 너무 싼 걸 고르다 보니 비지떡을 또 만나게 된 케이스다. 연말이라 그런지 너무 비싼 숙소들 뿐이어서, 하는 수 없이 가격순으로 리스트를 정렬하고 가장 저렴한 호스텔을 예약했는데, 아뿔싸 체크인 리미트 시간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오후 6시 이후로는 체크인을 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사실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6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도로가 야속했다. 그리고 다른 승객들도 야속했다. 왜 도로는 이렇게나 막히고, 다른 손님들은 왜 전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하차를 요청해서 딜레이가 된 걸까. 왜 나는 마지막에 내려주는 것일까. 나는 결국 시차 1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7시 30분이 되어서야 숙소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우선 가봐야지... 가서 빌어봐야지...'


도나우 강의 풍경


    그러나 이번엔 숙소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조용한 마을 한 구석탱이에 나는 내려졌다. 그렇다고 주소가 틀렸던 것은 아니다. 건물 번호가 보이지 않을 뿐 도로명은 확실히 여기가 맞다. 그러나 불이 켜진 집도 없고, 호스텔 간판도 따로 보이지 않았다. 30분을 넘게 숙소를 찾아 마을을 돌아다녀도 전부 가정집으로 보일 뿐, 호스텔처럼 보이는 곳은 없었다. 이 정도면 아마 6시 이전에 맞춰 왔어도, 숙소를 찾느라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만 같은 수준이다. 뭐, 어쩌겠는가. 내가 늦은 걸. 하는 수 없이 다시 왔던 길을 걸어 가까운 맥도날드로 향했다. 와이파이를 잡아 다른 숙소를 예약해야 하니까.


맥도날드를 향해 걸어가는 길


    그런데, 그렇게 맥도날드를 향해 걷는데, 문득 머리가 너무 시린 게 아닌가.


    '잠깐만 내 모자는 어디 있지?'


    아니나 다를까 급하게 내린다고 모자를 차에 두고 내렸다. 차에서 베오그라드로 오는 내내 시간에 쫓겨 조마조마해하다 보니 모자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나 보다. 참... 하루 만에 정말 많은 걸 잃었다. 돈이며 시간이며 모자까지.

    이렇게나 무언갈 자주 잃어버리는데, 도대체 어떻게 아직까지 지갑은 멀쩡할까, 참 다행이면서도 신기하다.  




베오그라드의 해 질 녘 거리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하루만 머물 계획 었다. 때에 맞춰 스페인 순례자 길을 시작하기 위해 계속해서 급하게 이동 중이기 때문이다. 그저 이동 중에 만나는 도시들을 그냥 패스하기에는 아쉬우니까 잠깐 둘러보자는 생각으로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며 도시의 정취를 느끼고, 현지인의 삶을 살아보는 여행을 선호한다 말하고 다녔는데, 지금 당장은 아니다.

    그런데, 베오그라드에서는 일정을 바꿔 하루 더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오늘은 12월 30일, 내일이면 2020년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오그라드는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유럽 내에서 새해 파티로 가장 유명한 도시라고 하기 때문이다. 베오그라드로 올 때 만난 사람들도 파티를 즐기러 베오그라드에 가는 것이라 했고, 같은 호스텔에 머무는 사람도 전부 파티 생각으로 들떠 있어 보였다. 그래, 이렇게까지나 파티가 유명하다는데 가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발생했다. 베오그라드가 파티로 유명해도 너무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숙소가 꽉 차서 더 이상 머무는 기간을 연장할 수 없었다. 내 침대는 다음날에 파티를 즐기러 오는 누군가를 위해 비워줘야 하는 침대였던 것이다. 참... 뭐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래 뭐, 다음 도시인 사라예보에 파티가 없겠어...?'




볶음밥과, 정체모를 수프(맛있었음)


    요 근래 부엌이 있는 호스텔에 많이 머물고 있다. 아무래도 유럽은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직접 해 먹는 게 싸긴 싼가 보다. 동남아에선 사다가 해 먹으나, 밖에서 먹으나 둘 다 똑같이 저렴했기에 굳이 요리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부엌이 딸린 호스텔이 없었는데, 이곳은 다르다. 여긴 배낭여행자들에게 조금의 요리실력이 요구된다. 이번 호스텔도 공용 부엌이 있어서, 부족한 요리실력이지만 이번엔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었다.

    별 거 없는 식사지만 괜히 프라이팬을 휘적이니 진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손빨래, 요리 같이 살기 위한 행위들을 직접 할 때마다 진짜 여행을 하고 있구나 하며 실감하는 것 같다.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뭔가로 배우는 여행 같이 느껴지나 보다.

    내 여행은 바캉스, 호캉스가 아니라서 휴식, 편함, 릴랙스와는 거리가 좀 멀다. 되려 여행이 너무 피곤해서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꽤 많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여행은 놀기만을 위한 건 아니야, 성장하는 한성호를 위한 거야'하며 마음을 다잡을 뿐이다.


    그래 맞다. 성장하고 있다. (아니 이 정도로 매일 말하는 거 보면 거의 주문 수준인데?)


    고작 계란 두 개 깨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었을 뿐인데 별꼴이다. 그만큼 평소에 요리를 안 했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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