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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l 26. 2021

그게 아니고_Sarajevo, Bosnia

인싸로 가는 길

    우선 나의 여행기는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는 글인가 되짚어 볼 필요가 있겠다.


    다른 여행자들의 기행문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글쎄, 여행기에는 여러 콘셉트가 존재할 수 있다. 멋들어진 글을 써서, 여행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객관적인 정보를 담아, 여행하는 데에 재미를 주고,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과는 다르게 나는 그 당시에 느꼈던 나의 감정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글에 담는다. 물론 그러다 보니 조금 애매한 부분도 더러 있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감성이 가득한 사진과 글이 존재하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여행기라기보다 일기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글쎄, 목적은 정확하게 없다. 감성 여행 에세이처럼 누군가의 마음속에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움트게 하려는 것도 나의 목적이 아니고, 가이드북처럼 몰랐던 정보를 알게끔 만드는 것도 나의 목적이 아니다. 굳이 목적을 꼽아 보자면 나는 나의 치유를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했던 나의 감정들을 다시 0점으로 만들고,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일련의 생각들을 했으면 한다.

    '그래, 나도 여행을 하며 저런 부정적인 생각을 했었지.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나도 떠나볼까?'

    '여행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우선 열심히 해야겠다.' 등등

    여러 생각들로 번져 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조금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부정적이지만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어떤 순간을 (어쩌면, 너무 민망해서 이 부정적인 감정들을 스스로 외면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오늘은 참 혼자여서 외로웠다. 하지만 외롭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칭얼대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외로워서 힘들어!! 힘들다고!! 나 이렇게나 힘들게 여행하고 있어!!' 같이 찡찡대고 싶진 않다. 하지만 혼자여서 외로웠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의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세르비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경


    여태껏 내 인생에서 연말은 누군가와 늘 함께였다.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서 카운트다운을 한 적도 있었고, 여자 친구와 함께였던 적도 있고, 못해도 가족들과 늘 함께 새해를 맞이 하곤 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나는 혼자서 연말과 새해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제 나이가 좀 든 탓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나마 작년은 조금 나았다. 혼자였지만, 영화를 틀어놓고 분위기 낸답시고 와인 한 병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혼자임을 느낄 새 없이, 해 넘어가는 것도 모르고 곯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정신이 참 말짱했다. 찬바람에 더 정신을 차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문득 혼자인 게 너무 실감나는 그런, 카운트다운을 혼자서 했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10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로 넘어왔다.(편의상 보스니아라고 불러야지.) 유럽에서 카운트다운 파티로 가장 핫한 곳이 베오그라드라길래 그곳에서 카운트다운을 할 생각이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문득 그 사실이 아쉬워서 여기 사라예보엔 어떤 이벤트가 있을까 인터넷을 뒤적였다. 당연히 사람들끼리 모여 카운트다운을 하긴 할 텐데, 어디서 하는지, 어떤 파티가 있는지, 알아볼 요량이었다. 허나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순 없었다. 그렇다면 일단 가보는 수밖에 없지. 버스시간이 조금 애매해서 밤 10시에나 보스니아에 도착했는데, 밤 10시라는 시간이, 뭔가 시작하기엔 늦은 감이 없지 않아 들기도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카운트다운이 아니던가. 이 카운트다운을 즐기기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발걸음을 재촉했다. 예약해둔 호스텔로 가는 동안 지나치던 광장에선 카운트다운을 준비하며 공연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 곳곳에서는 폭죽 소리가 들렸고, 시간이 점점 12시가 되어 갈수록 2020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괜히 덩달아 마음이 들떠서 숙소까지 뛰다시피 걸어갔다. 어서 체크인을 하고 저 광장에서 카운트 다운을 외쳐야 하니까 말이다.

    숙소에 도착했는데 이미 숙소 로비에서는 사람들의 파티가 한창이었다. 한 남녀는 취기가 오를 대로 올라 고목나무와 매미처럼 떨어질 줄을 몰라했고, 모든 사람들이 전투를 앞둔 한 분대 마냥 미쳐 뛰놀기를 서로 다짐하며 광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저 파티에 참여는 하고 싶은데, 껴달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참 안 나오더라. 껴달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웃기기도 웃기고,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대화하며 무리와 섞이는 일은 더욱이 어렵게 느껴지기만 했다. 혹, 저들이 다 일행이면 어떡해. 이런 상황에서 내가 도대체 어떻게 낄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조금 일찍 도착했다면 저들과 시작을 함께하며 광장으로 같이 출발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질 못한 게 참 아쉽다.


    '아, 그냥 껴달라고 했어야 했나. 나 짐 풀고 나올 테니까 기다려달라고 했어야 했나.'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나는 사라예보


    결국 혼자 길을 나섰다. 길거리엔 전부 커플이거나, 삼삼오오 그룹을 만들어 광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길을 혼자 걷는 사람은 나와, 누더기 옷을 겹겹이 껴입은 집시들 뿐이었다. 심지어는 광장을 통제하는 경찰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광장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의 몸수색을 하던데, 혼자인 사람은 정말 나뿐이었다. 물론 잘 알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해도, 결국엔 그들도 남이라서 비슷한 종류의 외로운 마음이 들 것이라는 것을. 아무리 즐거운 감정을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공유한다고 한들, 한국의 친구들에 비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혼자인 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애써, '혼자라도 괜찮아', '나는 일부러 혼자 있는 거야.', '나는 혼자인 게 더 편한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광장에서 흘러나오는 모르는 노래를 대충 따라 부르고 콘서트를 보며 대충 몸을 흔들었다. 마침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도 있는 힘껏 (그러나 모두가 나를 돌아봐서 혼자임을 들키지 않을 정도로) 카운트다운을 함께했다. 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언어였다. 아마 보스니아어 이거나, 세르비아어일 테다. 나 혼자만 '파이브, 포, 쓰리, 투, 원'이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마저도 내가 혼자임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한국말로 할 걸. 아니 왜 이 동네 사람들은 키 까지 커가지고, 무대를 볼 수도 없고, 나를 이렇게나 거인들 사이에 낀 쭈구리 아시안처럼 만드는 것인지.

    돌아오는 길엔 뭐라도 하나 사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맥도널드에 들렀는데, 그 맥도날드엔 광장에 있었던 인파의 영향으로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역시나 그 와중에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건 나뿐이었다. 혼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없어서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나는 자꾸만 내 스스로를 외로움의 구석탱이로 밀어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혼자 구석탱이에서 외로움에 사무쳐하고 있는데, 화룡점정이 있었다. 바로, '칭챙총'이라는 말을 섞어 욕설과 함께 나를 바라보는 인종차별까지 당한 것이다. 참... 여러모로 사무치는 하루다. 화내고 싸울 법도 한데, 이쯤 되니 그냥 헛웃음이 나오더라.


화려한 연말 행사 무대 /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보려 하는데 잘 안 되는 본인


    외롭다는 이야기를 아주 장황하게 풀어서 썼는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외로워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여행하다 보면 이런 외로움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뭐 외로워서 힘든 건 이제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내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여행길이니까. 또 내가 선택해서 저들에게 끼워 달라고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고, 내가 선택해서 광장으로 찾아갔으며, 내가 선택해서 영어로 카운트다운을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 그리고 많이 양보해서, 내가 선택해서 동양인으로 태어났으니까! 근데, 아무리 내가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후...


Happy new year!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는 외롭다고 한탄하는 이야기는 아님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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